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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흑과 백 성헌이는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두툼한 안경을 썼지만 없어보이지는 않았다. 넌지시 물어봤다. “너, 어디사냐?” “시범아파트” 시범아파트라면 못사는 놈은 아닐텐데 이새끼는 밥을 싸오지 않는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밥하나만 더 싸줘” “왜” “결식아동이 하나 있어” “여의도 중학교에 결식아동이 어딨냐?” “몰라, 하나 싸줘.” 점심시간에 말했다. “야, 라면 내꺼까지 사와라. 내가 밥줄게” “왜?” “라면 먹고 싶어서 그래, 이새끼야.” 어느 토요일, 성헌이가 말한다. “엄마가 너 오란다.” “응?” “우리집에서 밥먹자” ‘아, 이새끼. 계모인가보다.’ 의외로 어머니의 모습은 인자했다. 성헌이 방에는 각종 OST LP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근사한 토요일 점심과 저녁을 얻어먹었다. 왜 이새끼가 도시.. 더보기
슬픔이 마를 일 없는 2009년. 김수환 추기경님, 외조모, 노무현 대통령님, 마이클잭슨, 김대중 대통령님, 한 때 내가 사랑하고 따르고 믿었던 분들이 올해 다 가셨다. 끝나는 삼재라고 하기엔 눈물 마를 일 없는 한해. 더보기
소주는 스타카토 잘봐, 골프, 탁구, 소주는 말이야, 스냅이 생명이야. 골프에서 후킹을 잘하는 사람은 100야드를 더 멀리 쳐, 현정화가 금메달을 딴건 서비스할 때의 안정적인 스냅 덕분이었어. 소주? 소주야말로 스냅이 중요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소주잔을 쥐어줬다. 소주는 부드럽게 손목의 힘을 빼고 스타카토로 마시는거야. 딱딱, 끊어서... 자, 보자. 하나 둘, 스냅을 사용해서 목에 털고 딸깍, 딸깍 스타카토로... 그녀의 목구멍으로 다섯잔째 소주를 부어 넣는다. 아욱겨, 소주를 이렇게 마시는 법이 도대체 어디 있다고 그래요? 너, 선비가 왜 생겼는지 알아? 갑자기 왜요? 조선시대 때 말이야, 양반은 벼슬을 해야 양반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할아버지가 양반이어도 양반이었지. 근데 벼슬을 못하는 양반, 거기에 돈도 없는 양.. 더보기
당신이 잠든 사이에 "효주?" "네" 누워있는 내게 그녀가 살포시 다가왔다. 귓말을 재잘거렸다. "하지마, 간지러워." "싫어하지 않는걸?" "그래도 하지마, 나 마누라 있어." "훗." 그녀의 머리에서 과일향이 났다. 시발, 내 머리 냄새는 맡지 말길. 니조랄 쓴게 걸릴까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녀가 내쪽으로 허리를 굽히자 하얀 폴로티 사이로 배꼽이 보였다. '좋은 산부인과 다녔구나.' 배꼽이 앙증맞게 1자로 빠져있다. 그리고 원만하게 잡혀있는 복근. 아, 아... 자꾸... 귀를 귀를... 그녀는 내 귀에 자꾸 바람을 넣다가... "찍!" 하고 이빨 사이로 침을 뱉었다. 다 큰 아름다운 처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버릇이었다. 과일향의 머리를 내 얼굴에 간지르며 다가오다가도 "찍~!" 내 무릎에 앉아 이야기 하다가도 "찍~!".. 더보기
연애 가방 안에 보인 책은 ‘연애 컨설팅’이었다. “이 병신아. 니가 안되는 이유를 알려줄까? 쓰레기를 달고 다녀서 그래.” 책을 빼앗아 닭갈비 뱉고 있던 통에 넣었다. “형, 다 못읽었어.” 다 못 읽은게 다행이다. “이 벼멸구만도 못한놈아. 여자 꼬시고 싶으면 이런거 말고 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 하다못해 훈요십조만 외워도 여자는 넘어온다니까.” “형, 그런 게 어딨어.” “허, 못 믿네, 여보, 내가 당신 뭘로 꼬셨어.” 듣고 있던 아내가 대답한다. “훈요십조!” 부창부수. 환상의 복식조.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냐?” “뜬금없잖아.” “정답” “뭔 소리야?” “여보, 인생이 뭐지?” “뜬금없는 거” 브라보. 사람을 바보로 만들 때 필요한 건 딱 하나, 동조해주는 사람. “사람이 사람한테 왜 끌.. 더보기
아들이 말한다. 아빠, 일기는 왜써? 매일 똑같이 놀았는데. 네 영혼에 대한 반성을 하는거다. 응? 아들, 세상이 무한대처럼 있는게 아니라서 늘 같이 놀면 안돼. 언제나 새로운 놀이를 찾아봐. 혹,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새로운 친구들과 해봐. 오래된 친구들과 같은 놀이를 하는 거라면 같이 노는 친구의 새로운 면을 생각해봐. 그게 뭐야?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말자고. 그런데 아빠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게임하잖아. 맨날 똑같은 게임. 아들, 아빠가 언젠가 너에게 드넓은 아제로스 대륙을 가로지르며 전우를 위해 희생당했던 한 영웅의 서사시를 읇어줄 수 있는 날이 올거야. 그러니까 게임에서? 그럼 나도 네이버 쥬니어 게임하는 건 좋은거네? ... ... 자식 앞에서는 숭늉도 먹지 말자. 아내는 부자간의 대화를 들으며 콧방귀를 낀.. 더보기
아들이 다 컸다 작년까지만 해도 믿었다. 아들은.... 아빠 지금 뭐해? 응, 지금 아빠는 파워포스레인저 레드와 지구를 지키기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거짓말.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봐. (광주씨, 아들, 설명좀 해줘.) 안녕 수겸아, 아저씨는 파워포스레인저 레드야! 으아아아아아아~ 엄마, 레드가 나한테 전화했어!!!!! 아빠는 영웅이 된다. 지구를 구하는 우주전사들과 연석회의라니. 하루는 그렌라간의 시몬을 만나고 하루는 사오정과 함께 손오공의 만행에 대한 토론을 하고 하루는 원피스의 크로커다일과 함께 해양한국, 빛나는 조국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그리고 또 어느날은 격동 50년, 역사스페셜의 주인공과 인사를 한다. 아들이 특히 감격하는 건 여자 주인공들과 조우할 때다. 물론 목소리만으로 조우해야지. 하지만 만나면 끝나는.. 더보기
그해 겨울 바람이 불었다. 네대째 피는 담배는 입에 썼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의 어깨는 계속 들썩거렸다. "가는 사람은 가는 거다. 뭘 해도 잡을 수 없는 거다." "... ..." "여자가 그년 밖에 없냐. 이 개새끼야" "... ..." 여섯병 째 소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세상은 둘로 쪼개졌다. 아스팔트가 춤을 추는데 몸이 가눠지지 않았다. 그를 업고 인사동을 가로질러 현대 계동 사옥을 나올 때까지 그는 위를 게워내 실연을 토해냈다. 고갈비와 막걸리와 소주와 파전과 김치와 동태찌게를 먹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쓰디쓴 20대의 피고름이었다. 엎다가 지쳐 스페이스 잔디밭에 벌렁 누웠다. 새벽의 바람은 찼고 3주뒤 그가 그리워하던 여자는 그렇게도 어린 나이에 갑상선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전화가 온건 방금전. .. 더보기
노무현대통령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가 "내 마지막 재산이라곤 이 집 하난데, 집값 떨어지면 나 네신세 져야잖니. 그래서 이명박 찍을란다." 그말에 난 차마 어머니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역시 비루한 월급쟁이에 불과했으니까요. 제 식솔 챙기기만도 힘들었습니다. 촛불을 들고 탄핵을 반대하고, 용산의 참사에 울분을 터뜨리고 촛불을 들었지만 엄마를 막지는 못했어요. 제 명의의 집한채가 그렇게 무서운 거였습니다. 네, 이런일이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에게는 그 죄책감을 못버리고 항상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살 동안에 다시 오지 못할 대통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가 FTA를 비준하는 것, 파병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가 보여준 담대함과 신뢰는 믿어야 하는 거라고..." 당신은 최소한 .. 더보기
축하한다. 얄팍한 양심과 조중동.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되었다. 근데, 너희들이 이긴 거, 아니다. 아직 결과가 나온건 아니다. 너희들의 승리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너희가 노무현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습자지처럼 얇은 우리의 보잘것 없는 민주주의 의식과 이기심이 노무현을 몰아낸 것을 안다. 한 판, 제대로 떠보자. 더보기
나는... 노빠였다. 노무현을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한 만큼 증오했다. 근데,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난 한국 정치의 희망을 버린다. 니들의 잘난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가든 상관 없다. 니들의 주택대출, 아파트값, 그리고 니들의 주식이 더 중요한 거니까... 니들의 애들이 살아야할 정의 같은건 껌같은 거니까... 퉤. 그러길래 이양반아, 대연정도 할 배짱이면서 돈은 왜 받냐고... 마누라 단속은 왜 못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발. 더보기
그해 봄. 그러니까 나는, 스물 넷의 복학생이었다. 바람은 불고, 비가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공강의실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80%가 남자인 법대에서 볼 수 없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에버랜드의 가을도 즐거웠다. 나는 부추전을 잘했고, 그녀는 부추전을 잘 먹었다. 별 이유도 없이 누구들처럼 늘, 헤어짐은 있다. 그녀는 결혼한다며 전화를 했다. 군수 아들이라며 걱정없이 살거란다. 잘, 살아라. 나도 결혼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더 할 것 없이 아내와는 행복하고 아이와는 즐겁다. 머릿속에 스물네살, 비오던 공강의실은 유독 지워지지 않는다. 노래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더보기
반항의 계절 "여보" "우리 애 똥냄새가 심해지기 시작했어" "여보, 유전이야" "옛날에는 향긋했는데..." "당신이 변태였다가 사람이 되는 거겠지" "죽을래?" "여보, 그거 알아? 인생은 슬픈거야." "..." "똥냄새로 슬퍼하기에는 울 일이 많아." "..." "이제 우리는 연애도 할 수 없는 중년이잖아." 아내는 문을 닫고 유치원 동창 엄마들이랑 술을 마신다며 밖을 나섰다. 10시 아이는 자고 있고 나는 와우에 접속했다. "형수님이 이시간에 게임 하는 것 봐줘요?" "인생은 슬픈 거니까..." 25인 낙스를 돌고 게임을 종료할 즈음 백세주 4잔을 마신 마누라가 돌아왔다. "여보, 그래도 우리, 연애할 때는 알콩달콩 했는데 말이야." "아직, 우리에겐 독한 똥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아들이 있잖아." "..." ".. 더보기
달란트 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에 에르메스 구두를 신고 나타난 경호를 본 건 어느 더운 여름날 토요일이었다. 그가 도피성 해외유학을 간지 8년만이었다. 그즈음... 줄리아나의 메인 웨이터들이 시두스로 빠져나갔고 얼라이브는 불이 났으며 토마토는 문을 닫고 돈텔마마가 중년의 성지로 떠오르던 그 즈음. 그룹과외는 돈이 됐다. 4명에 25, 5명에 20으로 한 달을 굴리면 어떻게든 100만원이 들어왔다. 1월부터 과외를 하면 3월까지는 놀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나이트사를 장황하게 읊었다. 3월부터는 선배들이 4년 전부터 모아놓은 중간고사 기출문제를 워드로 정리해 풀게 했다. 40등을 맴돌던 아이들은 20등 이내로 들어왔다. 모의고사는 당연히 오르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들에게 모의고사야말로 6개월 이.. 더보기
구라 오딧세이 한양대. 뽀얗고 작고 귀여운 여자가 앞자리에 앉았다. 영택이한테 말했다. "야, 쟤 이쁘다." 영택이는 말했다. "병시나, 니가 쟬 꼬시면 내가 술값 낸다." 이미 소주 두 병반을 마셨기 때문에 쪽팔림 같은 건 없었다. 아줌마한테 도꾸리 한 병을 시켰다. 도꾸리를 들고 마주보고 있는 테이블로 갔다. "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요." 앉았다. "액면 딱, 보니까 내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데 말 놓을게요." "네?" "오케이, 승락했고." "네?" "이름은?" "네?" 그녀의 눈빛이 "넌 뭐하는 새끼냐?"라고 묻는듯하다. 이럴 때 타이밍을 놓치면 난 한갓 불량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짐승같은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구면이라서... 몇학년이었지?" "저, 졸업했..... 더보기
서해 박경조 경사(사후 경위진급)가 중국어선의 저항에 삽으로 머리를 맞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 서해상 가거도로부터 200해리 지역. 바다는 검은색이었다. 사람이 빠지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수심이라고 했다. 죽으면 시체도 찾을 수 없다. 3000톤급 경비함에서 비추는 서치라이트에 바다는 유리알 같았다. 파도의 포말조차 일지 않는 10월의 가을바다였다. 밤이면 섹스폰을 부는 함장은 나에게 “뱃사람”을 권유했다. 이런 잔잔한 날은 거의 없다고 했다. 서치라이트에 비춰진 바다 밑에는 커다란 해파리가 보였다. 소복의 귀신같아 보였다. “수온이 올라가면 해파리가 많이 보입니다.” 누군가 그랬다. 3003함에서 박경사의 부인이 위령제를 위해 배위에 올랐다. 그녀는 가거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편을 .. 더보기
고속도로의 고독자. 1998년의 가을은 추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풍족했던 돈은 오링이 났다. 성범이의 큐백을 메고 여름을 보냈다. 전국의 동네 당구장을 돌며 당구를 쳤다. SBS 대학당구선구권 대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 찬스라고 했다. 오후에는 당구로, 밤에는 바둑이로 동네를 쓸었다. 100만원을 따면 50만원을 뱉었고 200만원을 따면 150만원을 뱉었다. “더 따면 네가 어떻게 막아줘도 등 따인다.” 먹고 마시고 자는 데 하루 20만원이 들었다. 성범이는 언제나 반으로 나눴다. 일당 15만원이면 제법 돈이 됐다. 여름방학이 지나자 각자 400만 원정도 쥘 수 있었다. 성범이는 휴학을 했다. 나는 알토란같은 400만원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그런 게 고민으로 잘 써질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돈의 .. 더보기
다시오지 않을 자전거. 전설의 고향 소재지가 나왔다. 5시 30분. 거기서 잤다가는 토막살인이라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양현아, 산 하나 더 넘자.” “응” 1997년 6월. 뜬금없이 자전거가 사고 싶었다. 중국제 알톤 자전거는 12만원이었고 허우대는 멀쩡했지만 브레이크를 잡아도 미끄러졌다. 떡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여행이 가고 싶었다. “형, 자전거로 여행이나 가자.” “그래.” 재웅이 형은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생각이란 걸 하기에는 너무도 가냘픈 머리를 갖고 있었다. 6월 20일 자전거를 타고 잠실로 가서 재웅이형과 합류했다. 오후에는 교부문고에 들러 도별 지도를 샀고 찬거리를 샀다. 스팸, 김치, 삼겹살, 멸치볶음 및 각종 밑반찬을 때려 넣고 찌개를 끓였다. 먹을 만 했다. 아침부터 비가 왔.. 더보기
다들 없는 사무실. 그러니까 나는, 스물 넷의 복학생이었다. 바람은 불고, 비가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공강의실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80%가 남자인 법대에서 볼 수 없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에버랜드의 가을도 즐거웠다. 나는 부추전을 잘했고, 그녀는 부추전을 잘 먹었다. 별 이유도 없이 누구들처럼 늘, 헤어짐은 있다. 그녀는 결혼한다며 전화를 했다. 군수 아들이라며 걱정없이 살거란다. 잘, 살아라. 나도 결혼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더 할 것 없이 아내와는 행복하고 아이와는 즐겁다. 머릿속에 스물네살, 비오던 공강의실은 유독 지워지지 않는다. 노래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더보기
인생역정 친구 용범이의 첫사랑은 박호순이었다. 그녀는 이름처럼 큰 가슴을 달고 있었다. 친구한테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생각한 우리는 애써 모른척 했지만 그녀의 가슴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컵. 이름을 뒤집으면 순호박, 호박만했다. 몽골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사이즈였다. 아마도 몇대 조상을 훑고 올라가면 거문도 사건이나 제너럴 샤먼호 사건과 연관있을 핏줄일거라 조심스럽게 짐작할 뿐이었다. 첫사랑은 늘 그렇듯 실패한다. 용범이가 두번째 만난 사랑은 이름마저도 부르조아틱한 '노란금'양이었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무남독녀라 동생이 없었다. 노란똥, 노란변, 노란색, 뭐 둘째가 있어도 나쁠 것 .. 더보기
고등학교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엄마는 울었다. "너를 고계로 보내다니..... 내가....." 고계는 장충 고등학교의 옛 이름이었다. 그리고 1991년 학력고사가 끝나자, 담임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결국, 너희들 중에 서울대 가는 놈은 없구나." 송광태의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해서 우리는 노래했다. "그 누가 아무리 실업계라고 우겨도 장충은 인문계, 인문계!!" 실업계 학교를 비하해서 만든 노래가 아니었다. 고3임에도 전혀 긴장감 없는 우리들의 자괴감이 만든 노래였다. 대한민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도 3:30, 4:30에 끝나는 학교는 없었다. 장충이 유일했다. 우리는 고3인 주제에 6학년 동생보다도 일찍 하교하는 게 창피했다. 근처의 당구장, 만화가게, 오락실은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었다. 윤리선생은 우리에게.. 더보기
쟈스퍼 밴쿠버에 내리는 비행기가 4시간 연착을 했기에 당연히 갈아탈 비행기에 웨이팅을 걸어 놓아야 했다. 다행히도 토론토까지 가는 비행기는 3시간 뒤에 탈 수 있었다. 문제는 토론토에서도 있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삼각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세관에 신고를 하고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것이 새벽 2시. 낮은 기압에서 세균은 제세상을 만났다.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신발을 벗는 순간,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났다. 맡지 않고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가죽이 썩어도 이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차마, 객실에 신발을 둘 자신이 없었기에 비상계단 창문을 열고 걸쳐 놓았다. 다음날 없어진 신발을 프론트에서 찾았는데 비닐 네 겹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미스 한국일보이자 잘 나가는 리포터였던 그녀는 내 옆에.. 더보기
열하홉 소녀의 절규는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옷을 입지 않아도 됐다. 모기, 파리 같은 해충이 없었고 독사, 맹수, 독초가 없었다. 남자들은 고깔 하나를 자지에 씌워 다닐 뿐이었고, 여자가 입은 것이라곤 손바닥만한 UN이 지급해준 나이키 스포츠 팬티거나 바나나 잎으로 만든 속곳 같은 것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바누아투 족이라고 했다. 그 섬을 찾아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누아투 족은 칡넝쿨을 발목에 묶어 성인식을 했다. 그냥 보아도 위태로운 얼기설기 엮은 덩굴나무 위에서 떨어져 가장 지면에 가깝게 머리가 떠 있는 자가 그 부족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취했다. 아, 박지선이 바누아투 족이었다면 추장의 와이프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차지였을 것이다. 호주에서 경비행기로 4시간을 달려 바다에 내렸다. 뗏목 같은 배에 내려 육지로 다다르자 파도가.. 더보기
홍해의 기적 306보충대에서는 말이 돌았다. 환상의 17사, 꿈의 30사, 질 수 없다 25사. 중학교 2학년 때 마음에 들던 여자애를 따라 교회에 나간 날이 부활절이었다. 그 때 부활절 달걀을 두 개 반 먹은 덕분인지 난, 25사를 발령받았다. 1개 중대는 250명이었다. 중대선임을 설레발로 꿰찰 수 있었다. 중대선임은 6박7일의 포상휴가가 주어지는 자리였다. 두 개의 중대가 한 연병장을 공유했다. 우리는 2주 먼저 들어온 중대와 연병장을 같이 썼다. 연병장 주위는 목책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탈영하기 쉬워보였다. 문제는 탈영을 하면 어디로 갈 지 모른다는 점이었으며 우리는 아직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누구요?”라고 암구어를 외치는 저능아 신병들이었다. 일요일이면 공을 찼다. 선임중대가 아침식사 후 250명이 5개.. 더보기
황홀한 3주를 준 대표팀에게 감사 드립니다. 2002년은 기적이었습니다. 흙바닥에서 공을 차고 슬라이딩만 하면 화상을 입는 효창구장에서 시합을 하던 선수들이 월드컵 4강이라니요?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16강에서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고 표효하던 때, 안정환이 결승골을 넣고 기절했을 때, 아, 홍명보가 처음 화면에서 이빨을 보이며 웃었던 마지막 승부차기...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우리는 강했습니다. 똑같은 감동을 작년 베이징에서 경험했지요. 아, 쿠바와의 결승전이 TV드라마였다면 승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을 겁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박찬호, 이승엽, 박진만이 줄줄이 빠진 대표팀, 다리마저 불편한 노감독이 이끄는 별볼일 없는 대표팀이 준우승까지 했습.. 더보기
근황. 지난 9월부터 11월 5일까지 서해상 EEZ경계에 날밤을 샜고 11월 9일 KBS스페셜 '위기의 바다 서해 47일간의 기록'을 내보냈다. 11.4% 전 국토의 3배가 넘는 바다를 단 6천명이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그 기간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제기와 상을 샀다. 서해가 끝나자 3월 방송예정인 욕하는 10대 촬영과 YTN 파일럿 제작에 들어갔으며 장장 6개월간 블로그를 버리고 있었다. 그간 살 땅을 지키고자 화염병을 든 서민을 화형시킨 미친나라에서 진실을 맞췄다는 죄로 구속수감되는 말도 안되는 나라에서 경제사범 추정자가 경제 대통령이 되는 이 코미디 같은 나라에서 바빴다. 바빠서 세상에 눈 못돌리는 게 너무나도 미안한 지금이다. 더보기
천원돌파 그렌라간 연출을 마친 소회 2007년 5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0여년을 담 쌓고 살았던 열혈 로봇 애니메이션은 이제 ‘30대가 즐길 장르가 아니다’ 생각했습니다. 10년 만에 걸작이 나왔다고 주위에서 말할 때에도 그저 ‘우리 애가 볼 수 있을까?’ 정도의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애 보여줄 요량으로 두어 편 다운 받았습니다. 다운받은 날 정주행으로 16편까지 보며 한가로울 늦봄의 일요일을 날려먹어야 했습니다. 아이와 아내의 따가운 눈총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이런 두근거림이 얼마만이던가요? 아, 아마도 제타 건담 시리즈를 복사본 VHS의 지글거림을 참으며 보던 때 이후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얼마 뒤 제작 스케줄 문제로 애니맥스 편성 담당자 분들과 회의 도중 농담처럼 말이 나왔습니다. “가이낙스에서 만든 그렌라간이 들어오면 아.. 더보기
찌질이들아. 은, 동메달 땄다고 우는 선수들한데 쪽팔리다고 하지 마라. 우리나라에서의 2등, 3등 졸라 서럽거든요. 먹고 사는 문제이니까요. 양키 쉐키들은 동메달에도 금메달처럼 기뻐하고 한다는데 사실 그거 반쯤은 가정교육, 사회교육의 산실이에요. 걔들은 메달따고 우는 게 쿨하지 않다고, 촌스럽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닌 경우가 있는데 메달 자체가 귀한 나라라던지, 뜻밖의 메달권에 든 선수가 그렇죠. 사실, 올림픽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경찰 중에 총 잘 쏘는 놈이 올림픽 사격 나가고 귀족들 중에 말 좀 타는 놈이 올림픽 승마 나가고 소방관 중에 제법 불좀 끄는 놈이 올림픽 장애물 나가고 그랬거든요. 에, 80년대까지라는 단서가 붙지만... 아마추어 정신이란게 그런거잖아요. 올림픽 종목 중에 사실 그걸로만 먹고 살 수 있는 종목이 몇 개 안되거든요. 그런 역사적 기반 초기부터.. 더보기
지금 한나라당과 MB가 하는 짓은.... 도대체 이꼴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마음으로 우는 것도 지쳐간다. (사진은 달롱넷 머피님이 구하신 사진 무단 쌔빔. 저작권 말씀하시면 내림) 더보기
내가 영진공인게 자랑스럽습니다. 더불어 토요일날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어느 촛불 문화제 참가자의 외침.. "너 2MB냐!! 난 강GB다!!!!!" 그렇죠. 메가 단위보다는 기가 단위가 더 믿음직스럽다는... 오늘도 세상을 바꾸러 나갑니다. 전 연대부터 출발할 겁니다. 이한열 열사부터 지키러 갑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