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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서해

박경조 경사(사후 경위진급)가 중국어선의 저항에 삽으로 머리를 맞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

서해상 가거도로부터 200해리 지역.

바다는 검은색이었다.
사람이 빠지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수심이라고 했다.
죽으면 시체도 찾을 수 없다.
3000톤급 경비함에서 비추는 서치라이트에 바다는 유리알 같았다. 파도의 포말조차 일지 않는 10월의 가을바다였다.
밤이면 섹스폰을 부는 함장은 나에게 “뱃사람”을 권유했다. 이런 잔잔한 날은 거의 없다고 했다. 서치라이트에 비춰진 바다 밑에는 커다란 해파리가 보였다. 소복의 귀신같아 보였다. “수온이 올라가면 해파리가 많이 보입니다.” 누군가 그랬다.

3003함에서 박경사의 부인이 위령제를 위해 배위에 올랐다. 그녀는 가거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편을 잃은 그녀의 슬픔이 먹먹하게 전해올 틈도 없이 카메라 감독에게 외쳤다. “잡았어? 저거 잡았어?”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던 내가 잔인해져 간다. 입이 썼다.

레이더에는 EEZ 경계를 걸치고 중국어선들이 빽빽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저쪽은 20톤급, 우리는 3000톤급. 10배 이상의 성능을 가진 레이더였지만 저쪽은 목선, 우리는 철선이기에 식별거리는 차이나지 않았다. 사자와 하이에나가 먹이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형국이었다.

밤의 바다는 적막했다. 사람들은 보름씩 피붙이들과 생이별을 한다. 8시간 3교대라지만 하루에 한두 번씩 걸리는 단속이면 모두가 나와서 대기하고 출동했다. 한번 출동에 평균 3~4시간. 16시간 근무가 올바른 표현이다.

파고가 높아 단속이 쉽지 않을 때에만 중국어선이 들어온다. 바다가 위험해지면 사람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단지 난간 하나에 있을 뿐이었다. 가져온 자쿠2.0 샤아는 가조립에 먹선까지 끝나고 데칼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고요하지만 긴장은 팽팽하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서 총은 오발위험이 매우 높다. 연막탄은 2초도 안되어 바람에 날린다. 섬광탄은 뒤돌면 그만이다. 중국어선에 접안하는 단정은 8인승 고무보트로 원래 구인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중국어선을 단속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Z1 카메라를 두 대째 해먹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단속에 걸리면 벌금은 5천만 원이었다. 2천만 원이었던 벌금은 중국 쪽에서 우리나라 어선의 불법조업을 적발하면 1억 원의 벌금을 매기면서 올랐다. 형평성 때문이었다. 중국목선이 5천만 원. 잡히면 그들의 인생은 끝난다. 목숨을 걸고 저항을 했다. 그물추를 던지기도 하고 다가오는 단정에 그물을 풀기도 했다. 각목, 삼지창, 낚싯대, 보이는 모두가 무기가 되었다.

바다는 고요했고 낭창낭창한 경찰들의 삶이 찍혔다. 다큐3일, VJ특공대에서나 나올법한 아이템이 되고 있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바닷물에 제기능을 못했고, 준비를 하고 있으면 바다는 유리알로 변했다.

목숨을 건 현장이 잡히지 않고 나이브한 일상만 잡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술을 가져오지 않았다. 애꿎은 담배는 하루 두 갑에서 세 갑으로 늘어났다.

침대에서 자고, 씻고, 제대로 된 밥을 먹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쫒고, 지리산 반달곰을 쫒고, 태백산맥에서 청설모를 찍을 때는 몸이 고생하니 마음적으로는 평온했다. 몸이 편하자 마음이 가시방석 위에 올랐다.


10월 말이되자 바람이 거세졌다.
가거도 인근 50해리 안쪽에서 거세게 저항하는 중국어선을 담을 수 있었다.
군산항에서 150해리 인근에서도 불법조업하던 어선을 잡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산에서 수리중인 3003함 직원을 인터뷰했다.
박경조 경위 사망 당시 상황을 찍은 채증용 Tape이 10여개 있다고 했다. 우리가 본 건 60분짜리 하나뿐이었다. 목포로 다시 내려가야 했다. 편집을 하기위해 올라온 나를 제외하고는 조연출, 카메라, VJ 모두가 현장에 나가있는 상황이었다. 혼자 내려가서 생길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가 두려웠다.

서장과 독고다이를 떴다. 난 테입을 던질듯이 들이댔다. 나이브한 일상만 있는 해양경찰의 모습이 나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배는 정박지를 벗어나면 서해청장 관할이었기에 그는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태풍을 태풍의 눈에서 피한 위치가 얼마나 위태한 자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수사과는 이틀동안 퇴근하지 못했다. 모든 캐비넷이 열렸고 14개의 테입을 회수했다. 서치라이트가 꺼져 까만 화면에 점 세 개만 보이는 화면에는 당시의 육성이 오롯이 살아있었다.

음성만 카피하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경조, 우리가 못찾으면 우린 다 같이 죽는거야”
“야, 옷 다 벗고, 무장 안하고 안잡을테니 경조만 내달라고 해!”
“아, 어떻게.. 경조가 중국배에 없답니다.”

사고당시 함에서는 박경조 경사가 중국배에 승선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높은 파고에 서치는 비켜갔고 그가 떨어질 때는 단정의 코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고생한만큼 결과는 좋았다. 11.2%
KBS스페셜 3년간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살다가 잊을지 몰라 흔적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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