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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아들이 말한다.

아빠, 일기는 왜써? 매일 똑같이 놀았는데.


네 영혼에 대한 반성을 하는거다.

응?

아들, 세상이 무한대처럼 있는게 아니라서 늘 같이 놀면 안돼.
언제나 새로운 놀이를 찾아봐.

혹,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새로운 친구들과 해봐.

오래된 친구들과 같은 놀이를 하는 거라면
같이 노는 친구의 새로운 면을 생각해봐.

그게 뭐야?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말자고.

그런데
아빠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게임하잖아.
맨날 똑같은 게임.


아들, 아빠가 언젠가 너에게 드넓은 아제로스 대륙을 가로지르며
전우를 위해 희생당했던 한 영웅의 서사시를 읇어줄 수 있는 날이 올거야.

그러니까 게임에서?
그럼 나도 네이버 쥬니어 게임하는 건 좋은거네?


... ...



자식 앞에서는 숭늉도 먹지 말자.


아내는 부자간의 대화를 들으며 콧방귀를 낀다.




애를 재우고서야 아내와 밤마실을 나간다.

맥스 한캔, 구운감자 한봉지.

500ml 마음먹고 마시면 두모금이면 끝나는 걸 오는 길에

홀짝홀짝 빼앗아 마시는 마눌신이 밉다.


너도 한캔 사던가.

뺏어 마시는 게 맛있어.

퉤, 캔에 침을 뱉었다.


뒷굽이 제법 있는 아내의 오른쪽 운동화가

아주, 우연이었겠지만 내 왼발 두번째 발가락에 얹힌다.



어으어어어엌~


트렁크 빤스 차림에

맥주를 옆에 두고 컴퓨터방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컴퓨터를 켠다.


아내는 콜드케이스 4시즌 중반부터를 찾고

아이는 잔다.



아이가 있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이


오밤중에나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그리워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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