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캠핑장(2010.11.12~14) 본격 사슴벌레 탐험대.

아빠!

응?

캠핑장에 가면 말이야, 상수리 나무랑 졸참나무 있어?

당연히 있지!

오, 그럼 상수리 나무 있는데로 가!

왜?

상수리 나무랑 졸참나무 밑에 사슴벌레가 산대. 지금 얘들이 친구가 없어. 그러니까 그리로 가.

1991년 2800BPS 모뎀으로 피씨서브와 케텔을 오가며 본격 통신 세대를 20년간 살아온 아빠는 역시, 20여년을 지켜온 독수리 타법으로 검색신공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상수리나무, 캠핑장, 경기도....

찾았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물소리 캠핑장.

가자. 

그깟 사슴벌레 따위 포대로 싹쓸이 하러 가자꾸나.

금요일 아침에 도착한 캠핑장에는 아무도 없다.

해송잎이 금빛으로 깔려있는 마사토.

아름답다.

하지만.

누가 이게 상수리 나무래!!!

아이에겐 이 해송목을 해송목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홍길동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해송목을 해송목이라 부르지 못하고...

일단, 사슴벌레 따위는 싹 잊도록 해먹부터 걸어주자.

아이는 금방 새로운 놀이기구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 사슴벌레는 잊어다오. 아들.

우왕! 아빠, 이게 해먹이야?

아이가 해먹에 빠져있는 동안....

텐트는 잽싸게 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팩 4개만 박아도 자세가 나온다.

입구 둘, 뒤 둘.

금요일 오전, 하늘은 눈부시도록 파랗다.

이건, 어떤 합성물감으로도 만들 지 못할 파란 색.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아이는 모자를 던지며 외친다!!

상수리 나무!!

아들을 데리고 사이트 위쪽 야산에 올라

상수리 나무 비슷한듯한 나무에 땅을 파자고 한다.

물론 사슴벌레 같은 게 초등학교 2학년 땅파기에 잡히면 그건 사슴벌레가 아니다.

아이의 실망을 댓가로

자연은 또 한 숨 쉰다.

아들, 사슴벌레는 집에서보다 자연에서 사는 게 행복한 거라며 달랜다.

물론, 네게 잡히는 사슴벌레는 사슴벌레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는 또다른 놀잇감을 찾아 나서겠지.

이제 4번째 캠핑을 다니는 캠퍼가 얼마나 많은 캠핑장을 가봤겠냐마는

물소리 캠핑장은 그간 가본 캠핑장중에서도 바닥과 조경이 가장 좋은 곳중에 하나다.

바닥은 마사토로 배수가 원활하고 흙먼지가 거의 없으며

입구 좌측 사이트는 해송이 마치 금비단처럼 깔려 있다.

캠핑장 입구는 여름에는 곤란할지 몰라도

갈수기에는 운치있는 풍경을 그려낸다.

생각해보라.

오지를 탐험하듯 2km를 들어와 개울을 건너야만 들어오는 캠핑장의 입구를...

아들, 이제 이 어색한 V는 그만 하도록 하자.

아무도 없는 사이트

아무도 밟지 않은 해송

호젓한 자연.

캠핑장 근처에는 땔감으로 쓸만한 나무가 천지다.

금요일 오전은 나무꾼 모드로 다 보냈다.

입구 좌측 사이트는 저렇게 돌들로 구획을 나누어 놓았다.

왠만한 캠핑장 사이트 두곳 사이즈가 여기서는 한 사이트다.

저 돌을 식탁 대용으로 써도 좋고

톱질 선반으로 써도 좋고

짐 부려놓기도 좋다.

얌마, 너 일기는 쓰고 온거냐?

아빠, 자연을 찾아와서 그런 말씀은 언어도단이지요.

아이는 자신이 마구를 개발했다며 캐치볼을 하자고 한다.

던져봐라 아들.

이얍!!!

아들.

응?

이건 마구가 아니라 막 던지는 거야.

막!!

캐치볼만큼 아이와 아빠가 교감할 수 있는 놀이가 또 있을까?

눈은 던지는 상대를 보고 왼쪽 어깨는 상대를 향하게 하고 공은 머리위에서 곧게 던져.

밥먹었니? 숙제 했니? 일기 썼니?

이말보다 훨씬 아이를 사랑하는 말들.

이번에 새로 구입한 침낭.

필파워하며 안락함 하며 세식구가 두 개 쓰니 딱이다.

바닥은 200*200 에어박스+삼일정공 버클형 야침 2개 조합

남편이 애와 놀아주는 동안 독서삼매경인 마눌신

천고마비 정신에 따라 살도 열심히 불려주시는 중.

도끼야, 너 정말 수고 많았다.

도끼산 보람이 있는 하루.

구르믈 버서난 달.

달을 지붕삼아 책읽는 맛이란...

장작이 달아 오르니 몸도 마음도 늘어만 간다.

마눌신은 책을 읽으시는 건지... 조시는 건지...

사이트의 밤이 깊어갈수록

소주는 달다.

으허허어허헣헣ㅎ

저거슨 별.

100만년 만에 보는 별!!

아이는 친구를 사귀었다.

자양동 사는 기범이.

야, 일단 솔방울 떨어뜨리기 시합이다!!

연신 해송 나뭇잎 따기를 위해

하늘에 공을 던지는 아이들.

나무님. 미안합니다.

애들이 좀 개구장이들이니 이해해주세요.

뭐, 나중에 은혜는 갚겠습니다.

아이들 뛰놀기 너무 좋은 바닥

이제 종목을 바꿔서 축구.

이놈들, 지치지도 않는구나!

이번엔 해먹에서 썬더일레븐 카드놀이

너나, 우리 아들이나 비슷한 인생이구나.

지금은 여리겠지만 곧 저 앞의 해송들처럼 단단하고 늠름하게 자랄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시간여행을 하고 싶으면 캠핑장으로 오세요.

도시보다 두배로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추억은 네배로 쌓이고 말이죠.

이상. 포천 물소리 캠핑장에서의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