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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봐, 골프, 탁구, 소주는 말이야, 스냅이 생명이야.
골프에서 후킹을 잘하는 사람은 100야드를 더 멀리 쳐, 현정화가 금메달을 딴건 서비스할 때의 안정적인 스냅 덕분이었어. 소주?
소주야말로 스냅이 중요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소주잔을 쥐어줬다.
소주는 부드럽게 손목의 힘을 빼고 스타카토로 마시는거야. 딱딱, 끊어서...
자, 보자. 하나 둘, 스냅을 사용해서 목에 털고 딸깍, 딸깍 스타카토로...
그녀의 목구멍으로 다섯잔째 소주를 부어 넣는다.
아욱겨, 소주를 이렇게 마시는 법이 도대체 어디 있다고 그래요?
너, 선비가 왜 생겼는지 알아?
갑자기 왜요?
조선시대 때 말이야, 양반은 벼슬을 해야 양반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할아버지가 양반이어도 양반이었지. 근데 벼슬을 못하는 양반, 거기에 돈도 없는 양반들은 어떻게 내가 양반인지 증명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격식을 만들고 질서를 세우고 자신을 억압하면서 체통을 만들었어. 그래야 양반과 상놈이 구별이 되거든. 그건 주도도 마찬가지였지. 주도만으로도 문, 서, 발, 체로 개인별 서가를 정리한 것도 있는걸.
근데요?
근데 주도는 말이지. 지킬수록 몸가짐도 흐트러지지 않고 정신도 말짱해지는 효과까지 있는거라. 이제와서 양반의 법도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주도는 쓸만해.
말은 청산유수야.
그러니까 다시 스냅을 이용해서 스타카토.
이렇게?
여덟잔이 넘어간 그녀의 홍채가 포커스 아웃 된다.
16세기만 해도 양반은 전체 인구의 2% 정도였어. 여기 술집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진짜 양반은 한 명 정도, 많아야 두명 정도일걸.
그래서?
응, 자연으로 돌아가잔 이야기지. 상놈의 영혼이 빙의된 우리에게 그런 정조 따위는 사치야. 어쨌든 오빠 믿지?
이제 정조를 비롯한 모든 억압된 가치를 떨치고 분연하게 일어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뜨잖냐?
근데 오빠, 나 마법...
소주 네병 삼겹살 3인분 맥주 2병.
기회비용은 저 별이 된다.
그래,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지.
17년 후.
난데없이 초저녁에 아이를 재운 아내가 샤워를 한단다.
소주는 스타카토. 한 병을 두 번에 나눠 마신 후 애써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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