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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여행의 딴생각

2013년 3월 22~24, 소띠 방목캠핑

by 그럴껄 201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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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누가 뭐라든.

1973년생은 가시밭길이었다고 우길 수 있다.

학력고사의 끝물이었고,

군에 입대하자마자 김일성이 죽었고

졸업을 하면서 선물로 IMF 날벼락을 받았으며

가정을 꾸려 집을 살 때 쯤, 부동산 폭등과 외환위기 선물세트가 닥쳤고

사 놓은 집은 부동산 거품이 꺼져 하우스푸어의 주인공 역할을 도맡는 지경이 되었다.


40년대 아버지 세대의 수출드라이브 낙수효과도 없었고

50년대 삼촌 세대의 경제성장 주역의 타이틀도 달 수 없었으며

60년대 큰형 세대의 운동권, 민주화 주역, 386세대라는 아이덴티티도 수여받지 못했다.


독립하기 전까지 형 옷을 물려입을 수 밖에 없는 독한 둘째마냥

살아내야 했던, 그 세대의 중심으로서 당했던 1973년생들이었다.


또, 1973년생은 문화적 변혁과 소란의 시기에 중심이었다.

생물학적으로 가장 활동량이 많은 국민학교 3학년~5학년 시기에

전두환의 3S정책의 시혜로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시대를 맞이 했으며

최초의 어린이회원으로서 지역연고의 팬덤을 최초로 겪었고 

(시발롬의 7쥐 샛키들아. 내가 청룡 어린이 회원 된게 평생 한이다. 이놈드라!!)

부르뎅과 김민재 아동복이 전부였던 세상에

죠다쉬와 리바이스라는 진문화의 첫번째 수혜자들이었으며

왕자표와 말표 뿐이던 신발계에

나이키,아디다스, 미즈노를 통해 부의 계급화를 겪은 첫 어린이들이었으며

유재하, 김현식, 김광석, 이문세라는 황금같은 발라드 라인을 딛고

X세대로 서태지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첫세대이자

케텔과 PC서브 서비스에서 가장 어린 나이일 수 밖에 없었던 넷문화 시초의 가장 어린세대이기도 했다.

뿐이랴,

황홀한 사춘기, 허물벗은 밴, 간호사의 비밀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외설문학의 본격적인 번역홍수와

VHS가 이긴 개인 미디어 저장장치를 통한 도색문화의 황금기

젖소부인으로 터져나간 에로영화의 봇물기를 초중고 시절에 이겨낸

인내와 욕망의 극한 대립의 시기이기도 했다.


요컨대,

정현종 시를 빌어서 요약하자면

세대사이의 섬 중에 1970년대, 특히 1973년 세대의 섬은 서남해 가거도처럼 고립된

독한 둘째같은 팔자였다.


팔자였기에...

당한 놈들의 한은 당한 놈들이 알지. 

둘째 콤플렉스를 이고지고, 

만든 게 소띠 방목캠핑이라는 거였다.


충북, 산내들 캠핑장.


첫 날, 

10시 도착. 짐 풀고 술 한잔.

남은 흔적은 이 한 장이 전부



다음날,

오자마자 반말로 반겨주는 놈들.

서두가 길었던 건 다른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흉금없는 반말트기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다.

세대적 둘째로서 타 세대와 남다른 유대감은 이렇게 나타난다.

 


아들, 처음보는 사람들과 처 캠핑 어떠냐?



"뭐, 엄마 공부하란 소릴 피해 놀 수만 있다면"

2002년생. 뱃속에서 월드컵 4강을 '들어야'했던 슬픈 타이밍.

아들, 너도 쫌 아빠 세대와 비슷한 듯.



이번 캠핑의 호스트 쿠키신랑.

신비감 때문에 초점맞은 다른 사진 다 버리고

'히까리' 들어간 놈으로 선택.



아이들은 쉽게 친해진다.

5살 때는 5초,

6살 때는 10초,

5학년이 되면 2시간.



호스트는 쭈그려 앉아도 섹시하다.

포커스는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알 듯.



사색은 어른들만의 전유물만은 아니란다.

본격 사색모드에 잠긴..... 이거 누구 아들내미냐? 



이번 캠핑내내 호스트랜턴으로 책임을 다해준 형님 페트로막스.

내가 나이는 너보다 10살 어리지만

말 잘 들어줘서 고맙구나.



목공이의 배려로 첫 캠핑에 뻘쭘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금복주에 포커스가 맞춰진 건 함정.



사죄의 의미로 베스트 컷.

1961년생이 아니라 1973년생임.

내가 보증함.


소띠 캠퍼들 중 가장 말을 조리있게 했던 칠면조와

소띠 캠퍼들 중 가장 말을 많이 했던 떠나는 나그네.



위켄즈에 이어 여기까지 인연이 닿은 파키.

파키에게 말 놓기란 예수님과 야자타임하는 것 만큼 힘든 일이었지.



전국 쩍벌남 선수권 대회 우승자들.


"아빠, 저정도 쩍벌남들이라면 아빠도 충분히 우승권일거야."



붕붕이는 나중에 받게 될 엄마 잔소리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온 몸에 흙탕물을 튀기며


도룡뇽을 잡아왔다.


성용아,

닉네임과 인물이 이렇게 매치되는 사람은 너 처음봤다.

원빈이라니!! ㅋㅋ



소띠 방목 캠핑에 오라고 초대해준 유민태민.

선글라스를 끼면 1973년생 같다.


"사실, 저거 선글라스빨 아니냐?"

"응, 근데 크게 이야기 하진 말자. 삐진다."

사진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착각입니다.



이번에 캠핑장을 계획하고 있는

전직 국어선생님이자..... 또.....


아... 아무튼....



김밥을 가져다 주셨다.

김밥의 정수는 꼬다리에 있다는 걸 다시한 번 확인하였고....



혼이 담긴 김밥에 몰려드는 취재열기.

혼이 담기지 않은 투구는 가운데 들어와도 스트라이크가 아니듯.

혼이 담기지 않은 김밥말이는 다꾸왕을 넣어도 김밥이 아닌거야.



나의 마니또였던 폴로.

내가 준 내시경 플래쉬는 항문 삽입용이 아니야.

그런데는 쓰지마.



막창은 '금복주'와 함께

대구산으로 먹어야 진리



은미와 태민이는 본격 캐스트 어웨이 모드.


뗏목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파쇄석만한 게 없다고 항변하는 태민이



호야가 없을 때 다정했던 폴로와 스텔라.



멤버들은 교체되면서 늘어났고....



난, 겉으로는 웃었지만

'샹, 저놈들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해야 하나?' 싶어

계속 속으로 이름 외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ONT에서 뵌 야생대부형님도

찬초 출연 하셨고.



아이들은 나름의 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며 하루를 보냈다.



놀리고


웃고


아쉬워 하고


나르고


불꽃슛 하며


분노의 캐논슛까지.


"아빠, 저 스피드는 한 150km는 나오는 거 같아.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겠어."


곧 있을 포틀락 파티를 위해 준비하는 녀석들.



"꼬치의 생명은 손맛이야."

그래서 손도 씻지 않고 꼬치를 꼽는......




그리하여 완성되었다.



누구를 키운건 8할이 바람.

나를 키운건 8할이 반합.

반합이 키운 인물 떠나는 나그네.



파티는 시작되었고



악마의 스프가 들어간 오뎅탕에서


직접 양계장에서 4개월 길러 잡은 닭볶음탕에


무공해 파를 썰어넣은 등갈비


2년간 숙성시킨 포기김치에 영혼을 판 등갈비며


모택동이 즐겨먹었다는 그 우동볶음에


투뿔 등심이 등급도 쌩까고 참전한 찹스테이크


제레미가 울고갈 본격 토스트에


울 마누라 먹였으면 했던 도가니 수육과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근데 폴로야, 이거 음식이 뭐라고?)


포틀락에서는 안팔렸지만 결국 저녁 안주로 완판된

내 김치롤삼겹


먹는 이마저 숙연케 한 정갈한 무깻잎쌈과 


양파가 한 몸 희생해 다 녹여 만든 수육


주부습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 만든

유부초밥과


인고의 결정체, 돼지 훈제


그리고, 꼽아도 꼽아도 반포대가 남아있는 꼬치까지.



다 먹고서는 다양한 축하공연이 있었다.



인천시스터즈의 잔잔한 노래로부터



스피릿님의 공연까지


본격 김광석에 빠져든 어린이들.



밤은 그렇게 갔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보내고

각자의 메모리에 나름의 추억을 남기고



서로의 뷰파인더에

얼굴을 남기고


호스트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그 마음이 너무 깊어




확, 하늘까지 던져버리고


그냥, 던져만 버리고.







서로의 뷰파인더에 들어가려고



모이고



더 모이고 그렇게 


둘 째 세대인 우리는 그렇게 먹고 마시고 웃고 헤어졌다.



나랑 종친인 E.H. '카' 형님이 역사는 승자가 쓰는 희곡이라고 했듯

캠핑은 리뷰 쓴 자의 희곡이다.


누군 보고 좀 억울하고 우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쩌랴? 


내가 후딱 써버린 걸.


동갑끼리 유쾌하고 즐거웠던 기억은 

다음을 기약했다.


웃고 떠들었던 그 에너지가 지금도 내 마음에 아직 한가득이라 여운이 한참은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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