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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달란트

by 그럴껄 200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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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에 에르메스 구두를 신고 나타난 경호를 본 건 어느 더운 여름날 토요일이었다. 그가 도피성 해외유학을 간지 8년만이었다.

그즈음...
줄리아나의 메인 웨이터들이 시두스로 빠져나갔고 얼라이브는 불이 났으며 토마토는 문을 닫고 돈텔마마가 중년의 성지로 떠오르던 그 즈음.

그룹과외는 돈이 됐다. 4명에 25, 5명에 20으로 한 달을 굴리면 어떻게든 100만원이 들어왔다. 1월부터 과외를 하면 3월까지는 놀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나이트사를 장황하게 읊었다. 3월부터는 선배들이 4년 전부터 모아놓은 중간고사 기출문제를 워드로 정리해 풀게 했다. 40등을 맴돌던 아이들은 20등 이내로 들어왔다. 모의고사는 당연히 오르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들에게 모의고사야말로 6개월 이상 투자해야 성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항상 열변을 토했다. 내 혀끝에 진학을 원하는 아이들이 사회로 내몰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4명은 언제나 월말이면 모여 알함브라, 시두스, 줄리아나, 인터페이스, 얼라이브 중 한 곳을 갔다.

20만원씩 모으면 100만원이 됐다. 룸을 잡고 양주를 두병 시키면 50만원, 엘루이 스위트는 웨이터 태석이형에게 부탁해서 10만원에 잡을 수 있었다.

우리의 가방에는 750ml 6년산 양주가 하나씩 들어있었고 폭탄들을 위한 캡틴큐도 항상 한병씩 있었다.

우리의 정착지가 줄리아나가 된 건 다름아닌 수건 때문이었다.
각자가 수건이 있어야 다음 사람이 안심하고 호텔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스킬은 높아져 갔고 죽순이 언니들은 익숙해져 갔다.

옥흘라호마 주립대 다닌다는 혀꼬부라진 그녀가 세방실업 경리팀 대리라는 것도
NYU anthropology 석사과정이라던 그 아이가 사실 마포구 염리동 사는 애 둘 낳은 엄마라는 것도 알았을 즈음...

이름마저 혹세무민할 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의 경호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다.
화장실 방향제 같은 냄새가 났다.
그는 역시 에르메스라고 했다.

자신의 여자 친구라고 하며 라틴계 여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셋방실업 경리팀 대리보다, 마포구 염리동 누나보다 섹시했다.
글로벌적으로다가 놀아나는 그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그를 기꺼이 우리의 성지로 데리고 갔다.

부킹보다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사귀었는지 궁금했다.
한강에 노젓는 기분인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암내는 안 나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경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단 40불로 6천불을 딴 이야기부터 그곳에서 만난 창녀와의 총격전과 삼합회의 간부 한 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영화같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켄터키주”의 그랜드캐니언에서 낙족사 할 수 밖에 없었던 아찔한 순간을 이야기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두 손에 땀이 났다.

우리는 특히 ‘그뤵ㄲ께이어언’이라는 발음에 놀랐다.
조선인의 구강구조상 나올 수 없는 발음이었다.
내가 아무리 프린스턴 의대에서 닥터 하우스에게 포경수술을 받고 스타벅스 종이컵으로 잠지를 가린다고 해도 낼 수 없는 발음이었다.

우리는 이녀석 정도라면 얼마전까지 괌에서 살다가 왔다는, 그래서 번번히 부킹을 와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유진(가명)이와도 대화할 수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경호야, 형들이 가장 아끼는 킹카를 하나 소개해줄게”
“누군데?”
“어, 있어. 얼마전 부킹했는 데 최고였어. 너라면 그 앨 꼬실 수 있을거야.”
“나에게는 엠마가...”
“캐생키ㅡ, 형들의 소원이야...”




괌의 그녀가 들어왔다.
경호는 가볍게 ‘하이’라고 인사했다.





그게 그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경호는 계산도 하지 않았다.
볼쇼이 아이스발레단 단원과 염문을 뿌리며 소호 거리에서 1992년 빈티지 프랑스 와인을 깠다던 경호가 말이다.

택시비를 빌렸다.

“딸라 뿐이라서....”

친구중 하나가 “에라이 사기꾼 개새끼”라며 뒷통수를 쳤다.
“씨발”
 경호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구수한 우리말이 나왔다. 혀끝에서 된장 냄새가 났다.

며칠 뒤, 라틴계 그녀는 ‘엠마누엘 크뤼키’ 사진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그랜드캐니언은 애리조나 주에 있었다.
친구 중 하나는 이태원에서 에메네질도 제냐 짝퉁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아마, 향수는 내가 맡았던 방향제 그게 정답이었을 것이다.

훗날, 세월이 지나 경호 동생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언주로 구불리(현재 천진각)에서였다.

유학 뒤 2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3년간 놀다 군대 끌려갔으며 제대 후 아직까지 논다고 했다.

이상한 건 그에게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동생인 자신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경호 동생과 동석한 여자가 듣지 못할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 형은 그랜드캐니언이 켄터키주에 있다고 말해도 다들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신은 공평하지 않지만 각기 하나의 달란트를 줬지.”
동생은 나의 이 말을 왜 굳이 소곤거리며 말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170이 못되는 단신에 강호동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경호 동생 앞에는 소녀시대 티파니 같이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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