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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뽀얗고 작고 귀여운 여자가 앞자리에 앉았다.
영택이한테 말했다.
"야, 쟤 이쁘다."
영택이는 말했다.
"병시나, 니가 쟬 꼬시면 내가 술값 낸다."
이미 소주 두 병반을 마셨기 때문에 쪽팔림 같은 건 없었다.
아줌마한테 도꾸리 한 병을 시켰다.
도꾸리를 들고 마주보고 있는 테이블로 갔다.
"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요."
앉았다.
"액면 딱, 보니까 내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데 말 놓을게요."
"네?"
"오케이, 승락했고."
"네?"
"이름은?"
"네?"
그녀의 눈빛이 "넌 뭐하는 새끼냐?"라고 묻는듯하다. 이럴 때 타이밍을 놓치면 난 한갓 불량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짐승같은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구면이라서... 몇학년이었지?"
"저, 졸업했..."
"아, 그렇구나. 졸업했구나. 그럼, 지금은...?"
"행정...."
"아, 그래, 어디?"
"저, 공과대.."
"형, 기억나?"
"아뇨"
필사적으로 나를 기억해내려는 그녀였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나를 어떻게 기억해 낸단 말인가?
“그러니까 저, 누구더라, 왜 RT 선배 있잖아... 그, 김, 뭐드라?“
“영호 선배요?”
“어, 그때 걔랑 너 같이 보지 않았었나?”
“아, 아니요...”
“아, 그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으하하하하”
“네?”
“그건, 그렇고... 무슨과 졸업?”
“처...철학과요.”
“아, 내가 또 데카르트랑 친해, 그쉐끼, 합리주의, 맞죠? 미학이랑도 친하고. 18세기 미학사는 내가 다... 오죽 좋아하면 친구중에 김미학이도 있고....”
“저....”
“죄송한데, 저 친구랑 이야기 중인데요.”
“아, 친구분. 죄송. 그럼 이렇게 하죠.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니까 여기에 있는 술은 내가 살게요. 친구, 친구분 외동딸이죠?”
“네, 헉, 네. 어떻게...”
“친구분 키홀더에 차키가 붙어있는데 이건 친구분 차가 아니야. 보통 여자가 자기차를 가지면 이런 키홀더에 안꽂아. 이건 중년 취향이거든. 보니까 엄마차야.”
“엄마야...”
“뭘, 놀래. 그리고 가족 많은 집은 자식한테 차 안내줘. 그건 몰래 탔을 때나 가능한 건데 친구분 성격에 훔쳐탈 스타일은 아니야. 곱게 자란 외동딸이니까 엄마가 차 내준거지. 차종은 소나타, 그랜저인데 엄마차니까 소나타?”
“네”
“지금 앞에 있는 친구가 우울해서 술한잔 하자고 했지? 그래서 기어나왔지? 나오기 싫은데...”
“네, 어떻게...”
“앞에 앉은 분은 학교에서 지금 나온 복장이야. 불편해보이잖아. 정장바지 투피스에 V넥 원피스에, 울었는지 코쪽에 파운데이션이 살짝 지워져있어.”
“친구분은 대충입고 화장만 했지. 귀걸이, 목걸이 다 없이 세수하고 머리 안감고 바로 나왔잖아. 쪽팔리니까 엄마 차 빌려서...”
술기운에 신기가 돈다.
친구가 외동딸이란 건 대충 때려 맞춘거고, 그녀가 남동생이 있다는 것도 얼떨결에 때려 맞춘다. 그녀가 처음 자리 잡고서 남동생과 통화한걸 엿들었다는 건 이야기 안한다.
영택이를 불러 합석을 했다.
철학과 여자를 꼬실 때는 칸딘스키만한게 없다. 여자는 도형과 분할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모네가 왜 위대한지 여자는 서술로만 기억한다. 보이는 것과 실제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남자 쪽이 우세하다. 남자는 게임을 통해 공간과 지각, 실제와 경험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족보를 외듯이 줄줄이 외워주면 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뭐가 뭐를 낳듯이... 우리는 모네가 야수를 낳고 실제하는 것이 지각을 낳고 마그리트를 낳고 낳아보니 천재고, 피카소를 거쳐 칸딘스키를 낳고 이게 또 제프쿤스를 낳았는데 이 부러운 새끼는 치치올리나와 결혼을 했다. 예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세계적인 포르노 배우이자 이탈리아 국회의원과 결혼을 하다니...
이 어린양 둘은 기절한다. 지금 둘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망각한 채 우리와 앉아있다. 주여, 어린양을 찾지 마소서...
구라는 근거를 뒷받침 할 때 현실이 된다.
디테일의 힘이다.
나는 그날 결국 술을 얻어마셨고 즐거웠다.
작고 뽀얗고 이쁜 그녀는 2002년 5월 결혼을 했다.
난 무척 축하해주었다.
행복하길 바랬고 지금도 바란다.
그녀는 곧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붕붕이 엄마가 되었다.
만난지 9년, 결혼한지 8년.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그녀를 만났던 29살처럼 살고 있으나 그녀는 학부형으로서 마미캅 총무(뭔, 이름이 저따윈가?)도 하고 ‘동화책 읽는 어른들의 모임’(아, 관공서스러운 작명이여)에도 나가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어제, 그녀가 미학오디세이를 다시 읽는다.
난, 점잖게 그 책을 빼앗아 침대 밑으로 던졌다.
“왜그래?”
“나, 내일 민방위 소집이라 7시까지 나가야 해. 여보 불끄자.”
미처, 9년전 내 구라가 뽀록날 것이 두렵다는 말을 못하고 잠이 들었다.
뽀얗고 작고 귀여운 여자가 앞자리에 앉았다.
영택이한테 말했다.
"야, 쟤 이쁘다."
영택이는 말했다.
"병시나, 니가 쟬 꼬시면 내가 술값 낸다."
이미 소주 두 병반을 마셨기 때문에 쪽팔림 같은 건 없었다.
아줌마한테 도꾸리 한 병을 시켰다.
도꾸리를 들고 마주보고 있는 테이블로 갔다.
"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요."
앉았다.
"액면 딱, 보니까 내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데 말 놓을게요."
"네?"
"오케이, 승락했고."
"네?"
"이름은?"
"네?"
그녀의 눈빛이 "넌 뭐하는 새끼냐?"라고 묻는듯하다. 이럴 때 타이밍을 놓치면 난 한갓 불량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짐승같은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구면이라서... 몇학년이었지?"
"저, 졸업했..."
"아, 그렇구나. 졸업했구나. 그럼, 지금은...?"
"행정...."
"아, 그래, 어디?"
"저, 공과대.."
"형, 기억나?"
"아뇨"
필사적으로 나를 기억해내려는 그녀였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나를 어떻게 기억해 낸단 말인가?
“그러니까 저, 누구더라, 왜 RT 선배 있잖아... 그, 김, 뭐드라?“
“영호 선배요?”
“어, 그때 걔랑 너 같이 보지 않았었나?”
“아, 아니요...”
“아, 그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으하하하하”
“네?”
“그건, 그렇고... 무슨과 졸업?”
“처...철학과요.”
“아, 내가 또 데카르트랑 친해, 그쉐끼, 합리주의, 맞죠? 미학이랑도 친하고. 18세기 미학사는 내가 다... 오죽 좋아하면 친구중에 김미학이도 있고....”
“저....”
“죄송한데, 저 친구랑 이야기 중인데요.”
“아, 친구분. 죄송. 그럼 이렇게 하죠.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니까 여기에 있는 술은 내가 살게요. 친구, 친구분 외동딸이죠?”
“네, 헉, 네. 어떻게...”
“친구분 키홀더에 차키가 붙어있는데 이건 친구분 차가 아니야. 보통 여자가 자기차를 가지면 이런 키홀더에 안꽂아. 이건 중년 취향이거든. 보니까 엄마차야.”
“엄마야...”
“뭘, 놀래. 그리고 가족 많은 집은 자식한테 차 안내줘. 그건 몰래 탔을 때나 가능한 건데 친구분 성격에 훔쳐탈 스타일은 아니야. 곱게 자란 외동딸이니까 엄마가 차 내준거지. 차종은 소나타, 그랜저인데 엄마차니까 소나타?”
“네”
“지금 앞에 있는 친구가 우울해서 술한잔 하자고 했지? 그래서 기어나왔지? 나오기 싫은데...”
“네, 어떻게...”
“앞에 앉은 분은 학교에서 지금 나온 복장이야. 불편해보이잖아. 정장바지 투피스에 V넥 원피스에, 울었는지 코쪽에 파운데이션이 살짝 지워져있어.”
“친구분은 대충입고 화장만 했지. 귀걸이, 목걸이 다 없이 세수하고 머리 안감고 바로 나왔잖아. 쪽팔리니까 엄마 차 빌려서...”
술기운에 신기가 돈다.
친구가 외동딸이란 건 대충 때려 맞춘거고, 그녀가 남동생이 있다는 것도 얼떨결에 때려 맞춘다. 그녀가 처음 자리 잡고서 남동생과 통화한걸 엿들었다는 건 이야기 안한다.
영택이를 불러 합석을 했다.
철학과 여자를 꼬실 때는 칸딘스키만한게 없다. 여자는 도형과 분할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모네가 왜 위대한지 여자는 서술로만 기억한다. 보이는 것과 실제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남자 쪽이 우세하다. 남자는 게임을 통해 공간과 지각, 실제와 경험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족보를 외듯이 줄줄이 외워주면 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뭐가 뭐를 낳듯이... 우리는 모네가 야수를 낳고 실제하는 것이 지각을 낳고 마그리트를 낳고 낳아보니 천재고, 피카소를 거쳐 칸딘스키를 낳고 이게 또 제프쿤스를 낳았는데 이 부러운 새끼는 치치올리나와 결혼을 했다. 예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세계적인 포르노 배우이자 이탈리아 국회의원과 결혼을 하다니...
이 어린양 둘은 기절한다. 지금 둘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망각한 채 우리와 앉아있다. 주여, 어린양을 찾지 마소서...
구라는 근거를 뒷받침 할 때 현실이 된다.
디테일의 힘이다.
나는 그날 결국 술을 얻어마셨고 즐거웠다.
작고 뽀얗고 이쁜 그녀는 2002년 5월 결혼을 했다.
난 무척 축하해주었다.
행복하길 바랬고 지금도 바란다.
그녀는 곧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붕붕이 엄마가 되었다.
만난지 9년, 결혼한지 8년.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그녀를 만났던 29살처럼 살고 있으나 그녀는 학부형으로서 마미캅 총무(뭔, 이름이 저따윈가?)도 하고 ‘동화책 읽는 어른들의 모임’(아, 관공서스러운 작명이여)에도 나가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어제, 그녀가 미학오디세이를 다시 읽는다.
난, 점잖게 그 책을 빼앗아 침대 밑으로 던졌다.
“왜그래?”
“나, 내일 민방위 소집이라 7시까지 나가야 해. 여보 불끄자.”
미처, 9년전 내 구라가 뽀록날 것이 두렵다는 말을 못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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