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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다시오지 않을 자전거.

by 그럴껄 200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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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소재지가 나왔다.
5시 30분.
거기서 잤다가는 토막살인이라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양현아, 산 하나 더 넘자.”
“응”

1997년 6월.
뜬금없이 자전거가 사고 싶었다.
중국제 알톤 자전거는 12만원이었고 허우대는 멀쩡했지만 브레이크를 잡아도 미끄러졌다. 떡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여행이 가고 싶었다.

“형, 자전거로 여행이나 가자.”
“그래.”
재웅이 형은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생각이란 걸 하기에는 너무도 가냘픈 머리를 갖고 있었다.

6월 20일 자전거를 타고 잠실로 가서 재웅이형과 합류했다.
오후에는 교부문고에 들러 도별 지도를 샀고 찬거리를 샀다. 스팸, 김치, 삼겹살, 멸치볶음 및 각종 밑반찬을 때려 넣고 찌개를 끓였다. 먹을 만 했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오전이 지나자 엉덩이가 아려왔다. 생리대를 한봉지 사 안장에 붙였으나 곧 떨어졌다. 5~6세용 하기스 몇 겹을 안장에 감고 박스 테입으로 둘렀다. 엉덩이가 날아갈 것 같았다. 그깟 전립선 안장 따위....

첫날은 홍천의 어느 논바닥에 텐트를 쳤다.
밤하늘의 별을 세다 잠이 들 줄 알았다.

빌어먹을 개구리 새끼들은 잠들만 하면 울어댔다.
울다 멈추다, 울다 멈추다, 노이로제에 걸리는 줄 알았다. 그날 이후 논바닥에 텐트를 친 적이 없다. 홍천을 떠나 인제, 원통을 거쳐 삼일 째 한계령에 도착했다.

저것만 넘으면 불행끝 행복시작이다. 우리에겐 진리의 7번국도가 해변을 따라 있을테니...

한계령을 넘어 하조대에 도착하니 세상이 내 것 같았다.

하조대 백사장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파도가 치면서 삼겹살에 간을 해줬다. 소금을 찍어먹지 않아도 간이 맞았다. 주량이 약했던 형은 그날 텐트에서 자다가 토를 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됐다. 목만 내놓고 구덩이를 파면 바로 토를 할 수 있었다. 백사장은 만물을 보듬는 어머니.

하조대에서 강릉을 지나자 7번국도가 웬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강원도는 산넘어 마을이었다. 7번 국도는 태백산맥의 끝줄기를 타고 넘실댔다.

내리막길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5일째인지 6일째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황영조 마을을 지나서였던 것은 확실하다.

7번국도를 따라 마을마다 노란 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노란 간판에는 ‘전설의 고향 소재지’라고 적혀있었다. 산을 하나 넘는데 어림잡아 4~5시간. 좀 무리를 하기로 했다. 인적없는 마을에 을씨년스러운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가 왔다.

내 판쵸우는 빨간색이었다. 자전거가 달리니 얼굴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어깨가 1미터쯤 됐다. 빨간 어깨의 그 무엇이 들썩거리지도 않고 지나가니 마주오던 차들은 겁에 질려 상향등을 켰다. 상향등에 눈이 부시면 2~3초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위험했다.

“씨발, 차들 때문에 앞이 안보여”
“야, 네 덕분에 저 차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 일기 쓸거야. 귀신 봤다고...”

정상에 오르니 2층짜리 하얀색 건물이 넓은 앞마당과 함께 오른편에 나타났다.
정신병원이었다.
야트막한 나무담이 자전거를 탄 내 가슴께 정도 되었다.

“꺄아아아악~” 건물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아아악~” 나도 비명을 질렀다.

건물 안에서 어떤 여자는 1미터 너비의 빨간색 어깨가 들썩거리지 않고 지나가는 유령을 봤다.

난, 머리를 풀어헤친 채 흰 옷을 입고 비명을 지르는 귀신을 봤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누가랄 것없이 미친듯이 서로 비명을 지르며 서로의 시야속으로 사라졌다.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수백마리의 하루살이들이 입으로 들어왔다. 몇 개는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어렸을 때 티나 크래커를 먹다가 잠든 후 아침에 다시 먹은 적이 있다. 입에서 불개미가 기어 나왔다. 불개미가 까맣게 붙어 있었다. 그 이후로 오랜만에 맛보는 곤충의 맛이었다.

경상북도부터는 길이 편했다. 울산, 포항을 거쳐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다.

북제주군 조천읍 신천리에서 수박을 뽀리 까다가 걸렸다.
아저씨랑 3만원에 합의 봤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짐을 풀었다.
여자를 드디어 꼬셨다.

7살이라고 했다. 뒤웅박 팔자.

성산에서는 돈내기가 싫어 새벽 2시에 몰래 일출봉에 올랐다. 백록담소주 한 병과 한라산 소주 한병을 양파링 한봉지로 깠다. 침낭을 뒤집어 쓰고 침낭 앞에다 “일출시에 깨워주세요.”라고 썼다. 달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었다. 1997년 7월 4일이었다. 마지막 밤은 그렇게 보냈다.


눈을 떠보니 9시였다. 포스트잇에 쓴 “일출시에 깨워주세요”는 바람에 날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는 택배로 붙이고 비행기로 서울을 왔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고 잊혀지지도 않는다.







어제, 붕붕이와 최후의 야구결전을 위해 발산중학교를 찾았다. 둘만의 야구시합이 28대 22로 끝났다. 내가 이겼다. 아빠는 늘 강한 존재여야 한다.
농구코트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친구들 5명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엉겨서 같이 한 게임을 뛰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이제, 난 보름짜리 자전거 여행을 갈 여유도 없고 체력도 안되는 37살임을 절감했다. 꿈은 아이에게 넘겨줘야 할 때라 생각했다.

아직 늙지 않은 것은 구라와 손가락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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