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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이라고 해야겠다.
문제적 인간을 통해 타락한 세상을 타락한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지라르의 소설의의는 이 영화안에서도 일단 일리 이따. 지라르는 성숙한 사회에서의 폭력적인 행위를 정당한 질서안에서 허용하는 합법적인 폭력으로서 사회가 안정된다고 말한다. 물론 그의 논의 자체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런 도식적인 폭력에 대한 폭력의 정의는 플롯이라는 그릇안에서 움직이는 영화의 구도에서는 딱 입맛에 맞는 그릇 되겠다.
그러나 지라르의 이론에서 베틀로얄은 조금 비껴간다. 베틀로얄에서는 이미 아노미상태로 빠져버린 사회, 기성사회의 어른들을 매개로 폭력을 욕망하는 아이들. 이미 희생제의를 통해서 사회의 구조를 잡아보기엔 너무 늦은 때에 그들은 아이들을 희생물로써 삼으려 한다. 이것은 도피를 위한 어른들의 살인유희 이상 보이지 않는다. 고립된 섬 안에서 살기위해 죽이는 모습은 게임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은 삶을 게임으로 인식하면서부터(특히 전학생중 나쁜넘이 전형적이다......이름 까먹었음) 허무주의적인 양태를 보인다. 허무주의를 좁 쉽게 예를 들면 이런거다. 수많은 관중이 열광하는 야구게임이 그저 나와 상관없는 “단지” 게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수많은 관중과 나는 같은 공간에서 완전히 격리된 다른 존재가 된다. (이것을 좀더 설명하려면 사회생물학적 논의로 가야 하는데 지금은 각설한다.)
목적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욕망은 기성사회의 폭력으로 전이되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혼란한 사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죽이는 대안으로 사회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을 일본사회의 특이한 사회적 풍토라고 해야할지, 지라르의 논의가 비틀린 변형된 폭력의 욕망이라고 해야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뭐 하긴 일본넘들이야 할복같은 자의적 희생과 합법화 되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묵인되는 이지메, 희생의 대상으로 몰지도 않았는데 굳이 희생의 제물이 되기를 갈구하는 가미가제 같은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어 있는 졸라 이상한 나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베틀로얄의 영화적 구성이나 형태로서는 나름대로의 재미도 있고 긴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일본은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베틀로얄에 대한 평가를 유보한다. 씨바....뭘 알아야 지껄여 볼 것도 이쓸꺼쉬 아니냐??????
(사족 : 베틀로얄 덕분에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희생양, 악셀로드의 사회생물학적 상호수혜주의에 대한 인용에 있어서 보다 정확한 번역본이 없었으므로 나의 논점은 혹 거기서부터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이 희생제의라는 고대의 관습이 아직도 이지메라는 풍습을 통해서 존재하는 국가이다. 머....씨바 일본만 그러겠냐 마는....그러나 영화에서의 사회는 이미 희생제의로서는 지켜나갈 수 없는 아노미상태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으니....미래 일본사회에 대한 냉혹한 '후기'쯤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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