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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자장면을 먹는다는 건 짬뽕의 그리움을 먹는 것이다.(나는 가수다 보며)

(소주 두 병, 맥주 피티 하나 먹고 쓰는 주정이니 혹시 욕, 편견, 억지에 불편하신 분들은 미리 백스페이스 눌러주세요.)




1.
최악의 아이디어는 짬짜면이었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건 잔인한 행위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례다. 어느 날, 세상의 반을 갖게 된 거지가 나머지 반을 갖고 싶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이루어진 꿈에 대한 욕망의 끝도없음을 보여준 사례잖아.

결국, 소비는 포장을 뜯는 순간 새로운 소비를 창조하는 것이고 자본은 그 인간의 속성을 잔인하게 파헤친 마약 같은 거라는 거.  우리는 겪어서 알잖아.

스포츠카에 대한 소비가 그 것을 사면 마치 말리부 해변에 8등신 미녀가 옆에 탈듯한 환각에 사는 무모한 행동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고
지펠 냉장고를 사면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이 육즙 터져나갈 듯한 자세로 꽉 차 있을 거라는 터무니 없는 상상에 비롯된 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고
휘센 에어콘을 사면 내 귓볼 사이로 김연아가 콧바람을 넣어줄지도 모른다는 환각.

이제 다 알아버린 나이지만 마치 히로뽕처럼 끊을 수 없는 것. 소비.

아이유가 서른 아홉먹은 나한테 "호빠과~ 아휴~ 킁" 하면서 콧바람 넣는 것에 '설마 저년이' 하면서도 끌릴 수 밖에 없는 마약같은 문화.




2.
MSG가 30숟가락은 들어가야 "역시 음식은 MSG야!" 혹은 "역시 모든 음식의 끝에는 라면스프가 들어가야 해"라고 말하는 미각의 참담한 항복선언처럼 우리는 음악을 소비해 왔었다. MSG에 복종한 혀끝처럼 소녀시대의 허벅지에, 아이유의 아이쿠에, 카라의 현란한 엉덩이와 애프터 스쿨 가희의 농익은 눈웃음에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로 자위 하면서 자극에 길들은 나의 자신을 너무나 보호해 왔었어. 미안.

어, 씨발. 미안.


욕망 때문에 너무나 짬짜면만 탐닉해 왔었어. 이쁘고 노래도 잘하고, 잘생겼는데 음색도 좋고, 춤도 잘추는 데 노래도 시원시원하고.... 그러니까 진짜 맛은 좀 버리고 좀 모자란 외모는 수술로, 좀 미천한 소리는 기계로, 좀 어설픈 눈빛은 거 좆도 어울리지도 않는 미친 존재감으로.... 뭐 니미 뭐만 하면 미친 존재감이야. 티벳여우 닮은 여자애가 눈만 부릅떠도 미친 존재감이고 발성보다 프로틴만 냅다 퍼먹은 아이돌이 단추 두 개만 풀러도 미친 존재감이고 나? 나 말이지. 구하라가 논두렁에 자빠지기만 해도 미친 존재감, 완전 귀여움 이러면서 발색을 하며 발정난 숫캐마냥 학학 거렸다.

진심으로 못느끼고 있었다.

뭘 만들어도 MSG만 넣으면 다 입맛에 맞아버리는 문화를 자양분인양 쪽쪽 빨면서 소비를 해 왔다.



3.
"기성용이랑, 류헨진이랑, 박태환이랑, 김연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택도 없는 질문처럼 시작한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콧방귀를 끼면서 보다가 MSG가 없는 진짜들이

마치 다른 무공의 뿌리를 갖고 절대고수들이 칼을 빼어들고 한판 장을 벌이는 화산논검을 보아버린 느낌을 받았다.



임재범이 노래를 부를 때, 아들은 "아빠, 난 저 노래가 좋은지 모르겠는데 꼬추가 아파"라고 말했고

이소라가 노래를 부를 때는 "무서워, 근데 악마나 괴물이 아니야. 슬퍼"라고 말하는 무대를

같이 봤다.



4.
까마귀밥(?)이라고 국민학교 2학년 때 어떤 형이 따 먹어보라고 했던 콩알 반만한 열매. 쓰고, 시고, 떫은 데 끝은 달았던 그 정체모를 까만 열매의 꺼끌꺼끌한 느낌, 혹은 처음 입 속에 넣은 현미의 그 덜 정제된 불편함. 아니면 중작 까지 볶이지 못했던 마지막 녹차잎들을 아깝다고 따 놓은 절 들어간 어느 선배의 첫 볶은 녹차의 거칠고 누린 맛.

진짜, 원초적이고 본래의 맛.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진 맛이 아니라 원래 그놈이 가지고 있던 그 자체의 맛. 하나도 거르지 않은....



5.
아, 씨발. 임재범은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똘아이로 살아온 내 삶은 이랬다고 외치고 있었고, 이소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놓고 울고 있었어. 기교는 박정현이 죽였고 김범수는 그냥 노래로 태어난 것 같았어. 근데 감정적으로 이소라는, 임재범은 그냥 그걸 노래로 이야기 하더라고..



6.
짜장면은 짬뽕의 그리움으로 먹는 거야. 짬뽕은 짜장면의 애잔함을 먹는 거고. 임재범은 삶의 처연함으로 노래를 불렀고 이소라는 목놓고 대성통곡으로 노래를 부르더라고.

음정으로 하는 게 아니고.

박자로 하는 게 아니고.

음색으로 간지르는 게 아니고.


그냥 그거더라고. 그냥 거기서 핍진성이 콸콸콸. 막힘없이....



마음으로 울고 귀로 행복하고 오미자처럼 미치도록 복잡한 감정이 날 것으로 들어오는 노래였다.





망할, 도대체 말도 안되는 룰로 이렇게 가수들을 뽑아낸 김영희 피디(이제는 바뀌었지만)에게 같은 연출자로서 존경을 보낸다.






이 사람. 진짜 플롯의 힘을 아는 양반이다.
(게오르규가 대단한게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신화의 시대를.... 아씨.. 이거 사족이다.)







덧. 넘버원 작사, 작곡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이소라에게 감사했으면 좋겠다. 난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프고 처연하고 가슴아픈 이야기인지 이제사 알아 버렸다. 빈잔은 재해석인 거고 넘버원, 이건 정말 재발견이다. 정말, 진짜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