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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95년 깐느로부터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당시 개봉관에서 그 영화를 봤었는데, 발칸의 역사나 유고내전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내가 그 영화를 이해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그 영화에 대해 쏟아지는 각종 영화평들은 칭찬일색. 또한 에밀 쿠스트리차를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단어 '몽환적 리얼리즘'이 그때 역시 도배되듯 얘기되고 있었고 임순례 또한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에밀 쿠스트리차를 뽑았었다.
그런데 그 에밀 쿠스트리차가 그 얼마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비평가와 서구 지식인들이 <언더그라운드>를 맹렬히 비판했기 때문인데, 그 비판의 요지는 이 영화가 세르비아계를 옹호했다는 까닭이었다.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 과연 어떤 장면이 세르비아계를 옹호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하지만 또 다른 비판도 있다. 난 이 또 다른 비판에 더 많이 고개를 끄덕인다.
찰떡같은 지젝의 말을 개떡같이 전하자면 이렇다. <언더그라운드>는 발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발칸의 역사성을 제거하고 있다. 2차대전부터 유고내전에 이르기까지의 발칸의 모습을 하나의 커다란 우화로 만들어 서구 사회가 발칸반도에 대해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그려냈다. 따라서 발칸반도에서의 전쟁이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며, 항상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의 대열에는 정성일도 같이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좀 더 정확하게 <언더그라운드>는 발칸반도의 우화가 아니라, 발칸반도를 수수방관하는 서방세계의 우화이다. 그래서 전쟁 속에 모든 이야기를 끌어들이면서 정작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 모습은 놀랄만큼 발칸반도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입장도 표명할 수 없는 서방세계의 진퇴양난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러나 이보게, 쿠스투리차. 자네는 서방세계의 구경꾼이 아니라 형제란 말일세. 그런데도 황당무계한 유토피아론을 제시하면서 뻔뻔하게도 마지막 장면에 "그래도 역사는 계속된다"라고 덧붙인 것은 정말 심한 농담이군. 이 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은퇴를 결심했다고? 천만의 말씀. 그건 비난이 아니라 역사에 등돌리고 지하세계와 유토피아를 오가는 이 영화를 지상의 전장터로 끌어올리려는 정당한 노력일세. 전쟁은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했고, 자네 말처럼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니까."
결국 이러한 비판에 따르자면, 깐느는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발칸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어 하는 하나의 우화로써의 발칸을, 판타지로써의 발칸을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본 것일 따름이다. 발칸의 현실을 그렸다는 '리얼리즘' 앞에 '몽환적'이라는 단어를 갖다붙여 칭찬하는 일은 그로써 엄청난 코메디가 된다. 유행하는 말로, 그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인 것이다.
2.
나는 이 비판이 고대로 김기덕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서구인들이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열등한 대상, 문명화시켜줘야 하는 대상, 계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 근저에는 동양에 대한 동경이 깔려있다. 르네상스 시절 그리스/로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동양이 가지고 있는 비문명화된 태초의 원시적 힘, 신비, 이국취향을 그리워한다. 하물며 그들 헤브라이즘의 뿌리 역시 동양이다. 르네상스 오리엔탈리즘. 그리하여 이런 말까지 나온다. "동양이 우리를 소생케 하리라." 동양을 본받자는 얘기가 아니다. 동양에 대한 이 그리움은 동양을 지배함으로써 해결해 버렸으니까.
베를린은 어쩌면 김기덕의 영화에서 이러한 르네상스 오리엔탈리즘을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기덕의 영화 안에 있는 야만과 폭력,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 비이성... 이런 것을 보며 과거의 진한 향수를 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게다가 동양이 서양을 소생시키듯, 김기덕 영화의 여성은 남성을 구원한다. 동양은 모성만이 남은 여성. 김기덕의 영화에는 너무도 쉽게 강간당하며 욕정을 충족시켜주지만, 끝내는 따뜻하게 남성을 보듬아주는 모성만 남은 여성들이 살아있다.
그렇다면, 깐느가 발칸의 비극을 발딛고 있는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판타지만을 보았듯, 베를린 또한 한국의 현실을 발딛고 있는 김기덕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판타지만을 본 것은 아닐까?
김기덕 영화가 툭하면 묘사하는 밑바닥 인생들은 여전히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고, 김기덕 영화가 툭하면 묘사하는 여성들은 세계에서 세번째 높은 비율로 강간을 당하는 이 나라에서, 그러한 현실을 판타지(그것도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판타지)로 그려낸 영화를 보며 베를린은 감독상을 준 것이 아닐까?
수없이 현실에 내몰린 사람들이 갈 곳 몰라 하고, 수없이 강강당한 여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곳을 '날 것의 이미지'라는 해괴한 모습으로, 문명과 이성이 닿지 않는 원시의 아련한 밀림의 모습으로, 그로써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거대한 판타지로 만드는 김기덕의 영화 속에서, 19세기 서양이 갈구하던 신비롭고 엑조틱한 아름다움을 베를린은 본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현실에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 땅에서, 강간당한 여성의 슬픔에 어깨를 걸어야 하는 이 땅에서 말이다.
-------------
난 그래서 여전히 김기덕이 싫다. 김기덕에 대해 오바하는 언론매체와 한 마디도 얘기하지 못하는 한국영화 평자들 또한 마땅찮다. 게다가 더 싫은 것은 <언더그라운드>를 얘기하면 꼭 나오는 '몽환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처럼, 김기덕 영화를 얘기하면 꼭 언급되는 '날 것의 이미지'란 단어다. 날 것의 이미지인데... 뭐 어쩌라구?
------------------------------------------------------------
이건 겨우 은하계 최고의 우량홈피정도로 만족하려는 짤구닷컴(www.chulgoo.com)에서 짤구님의 글을 훔쳐온거다.
내가 기실 김기덕을 싫어할 자격은 없다. 불과 두어편의 (악어, 나쁜남자)를 본 것 뿐이고 그나마 집중력 떨어지는 시간에 방영된 케이블 방송과 디빅을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장에 집착하는 모습, 타이틀에 목숨거는 일을 많이 목격한다. 그것이 왜곡된 시각이나, 편차에 의한 것이라해도 말이다.
외국에 나가서 국위를 선양했다고 비판의 칼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에 날을 세우는 고짤구님 졸라 멋지지 않은가?
참..짤구님 자기 홈피좀 잘 관리 하시라.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95년 깐느로부터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당시 개봉관에서 그 영화를 봤었는데, 발칸의 역사나 유고내전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내가 그 영화를 이해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그 영화에 대해 쏟아지는 각종 영화평들은 칭찬일색. 또한 에밀 쿠스트리차를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단어 '몽환적 리얼리즘'이 그때 역시 도배되듯 얘기되고 있었고 임순례 또한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에밀 쿠스트리차를 뽑았었다.
그런데 그 에밀 쿠스트리차가 그 얼마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비평가와 서구 지식인들이 <언더그라운드>를 맹렬히 비판했기 때문인데, 그 비판의 요지는 이 영화가 세르비아계를 옹호했다는 까닭이었다.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 과연 어떤 장면이 세르비아계를 옹호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하지만 또 다른 비판도 있다. 난 이 또 다른 비판에 더 많이 고개를 끄덕인다.
찰떡같은 지젝의 말을 개떡같이 전하자면 이렇다. <언더그라운드>는 발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발칸의 역사성을 제거하고 있다. 2차대전부터 유고내전에 이르기까지의 발칸의 모습을 하나의 커다란 우화로 만들어 서구 사회가 발칸반도에 대해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그려냈다. 따라서 발칸반도에서의 전쟁이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며, 항상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의 대열에는 정성일도 같이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좀 더 정확하게 <언더그라운드>는 발칸반도의 우화가 아니라, 발칸반도를 수수방관하는 서방세계의 우화이다. 그래서 전쟁 속에 모든 이야기를 끌어들이면서 정작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 모습은 놀랄만큼 발칸반도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입장도 표명할 수 없는 서방세계의 진퇴양난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러나 이보게, 쿠스투리차. 자네는 서방세계의 구경꾼이 아니라 형제란 말일세. 그런데도 황당무계한 유토피아론을 제시하면서 뻔뻔하게도 마지막 장면에 "그래도 역사는 계속된다"라고 덧붙인 것은 정말 심한 농담이군. 이 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은퇴를 결심했다고? 천만의 말씀. 그건 비난이 아니라 역사에 등돌리고 지하세계와 유토피아를 오가는 이 영화를 지상의 전장터로 끌어올리려는 정당한 노력일세. 전쟁은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했고, 자네 말처럼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니까."
결국 이러한 비판에 따르자면, 깐느는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발칸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어 하는 하나의 우화로써의 발칸을, 판타지로써의 발칸을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본 것일 따름이다. 발칸의 현실을 그렸다는 '리얼리즘' 앞에 '몽환적'이라는 단어를 갖다붙여 칭찬하는 일은 그로써 엄청난 코메디가 된다. 유행하는 말로, 그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인 것이다.
2.
나는 이 비판이 고대로 김기덕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서구인들이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열등한 대상, 문명화시켜줘야 하는 대상, 계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 근저에는 동양에 대한 동경이 깔려있다. 르네상스 시절 그리스/로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동양이 가지고 있는 비문명화된 태초의 원시적 힘, 신비, 이국취향을 그리워한다. 하물며 그들 헤브라이즘의 뿌리 역시 동양이다. 르네상스 오리엔탈리즘. 그리하여 이런 말까지 나온다. "동양이 우리를 소생케 하리라." 동양을 본받자는 얘기가 아니다. 동양에 대한 이 그리움은 동양을 지배함으로써 해결해 버렸으니까.
베를린은 어쩌면 김기덕의 영화에서 이러한 르네상스 오리엔탈리즘을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기덕의 영화 안에 있는 야만과 폭력,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 비이성... 이런 것을 보며 과거의 진한 향수를 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게다가 동양이 서양을 소생시키듯, 김기덕 영화의 여성은 남성을 구원한다. 동양은 모성만이 남은 여성. 김기덕의 영화에는 너무도 쉽게 강간당하며 욕정을 충족시켜주지만, 끝내는 따뜻하게 남성을 보듬아주는 모성만 남은 여성들이 살아있다.
그렇다면, 깐느가 발칸의 비극을 발딛고 있는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판타지만을 보았듯, 베를린 또한 한국의 현실을 발딛고 있는 김기덕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판타지만을 본 것은 아닐까?
김기덕 영화가 툭하면 묘사하는 밑바닥 인생들은 여전히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고, 김기덕 영화가 툭하면 묘사하는 여성들은 세계에서 세번째 높은 비율로 강간을 당하는 이 나라에서, 그러한 현실을 판타지(그것도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판타지)로 그려낸 영화를 보며 베를린은 감독상을 준 것이 아닐까?
수없이 현실에 내몰린 사람들이 갈 곳 몰라 하고, 수없이 강강당한 여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곳을 '날 것의 이미지'라는 해괴한 모습으로, 문명과 이성이 닿지 않는 원시의 아련한 밀림의 모습으로, 그로써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거대한 판타지로 만드는 김기덕의 영화 속에서, 19세기 서양이 갈구하던 신비롭고 엑조틱한 아름다움을 베를린은 본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현실에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 땅에서, 강간당한 여성의 슬픔에 어깨를 걸어야 하는 이 땅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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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서 여전히 김기덕이 싫다. 김기덕에 대해 오바하는 언론매체와 한 마디도 얘기하지 못하는 한국영화 평자들 또한 마땅찮다. 게다가 더 싫은 것은 <언더그라운드>를 얘기하면 꼭 나오는 '몽환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처럼, 김기덕 영화를 얘기하면 꼭 언급되는 '날 것의 이미지'란 단어다. 날 것의 이미지인데... 뭐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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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겨우 은하계 최고의 우량홈피정도로 만족하려는 짤구닷컴(www.chulgoo.com)에서 짤구님의 글을 훔쳐온거다.
내가 기실 김기덕을 싫어할 자격은 없다. 불과 두어편의 (악어, 나쁜남자)를 본 것 뿐이고 그나마 집중력 떨어지는 시간에 방영된 케이블 방송과 디빅을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장에 집착하는 모습, 타이틀에 목숨거는 일을 많이 목격한다. 그것이 왜곡된 시각이나, 편차에 의한 것이라해도 말이다.
외국에 나가서 국위를 선양했다고 비판의 칼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에 날을 세우는 고짤구님 졸라 멋지지 않은가?
참..짤구님 자기 홈피좀 잘 관리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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