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판타지의 국가에 살고 있던 나에게 초현실적인 판타지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한번씩 전국이 암흑이 되는 민방위날이 되면 동네 앞까지 돼지머리의 공비가 쳐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살짝 떨리기도 했고 새디즘으로 중무장한 선생들은 1.5cm의 머리길이를 강요하며 삼청교육대 원생 대하듯 애들을 쥐어 패기에 바빴다. 80년대 후반,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체벌은 이미 폭력의 수위를 넘어섰고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얄팍한 구호는 폭력으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권력의 입장에서만...
폭력과 억압, 구호와 선동의 근대화 판타지에 몰입을 강요당해야 했던 우리는 굳이 신세계를 찾아 도피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신세계를 암만 그려봐야 우리 머릿속에는 고작 대머리 쿠데타나 빡통 암살밖에 떠오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대신 빡통의 요정과, 달짝한 씨바스리갈의 뒷이야기과 장*희씨의 도미 이유 등이 선데이서울스러운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판타지는 ‘황홀한 사춘기’가 열어주고 있었다.
도이시마 다께오.
주인공 마사오를 내세워 일본 전역의 여자를 별 어려움 없이 ‘따먹는’ 이 통속 소설은 전국의 중고등학교 남학생 토스테스테론 분비를 촉진시켰다. 친일파가 정권의 실세가 되고 정의에 폭력이 앞서며 폭력이 곧 ‘정의사회 구현’이 되는 이 비현실적인 세계에 아가씨, 아줌마, 심지어는 하숙집 아줌마 딸까지 범하는 마사오의 여성편력은 성을 통해 계급과 도덕의 벽을 부수는 판타지였다. 『구타하는 선생을 범하고, 집값으로 현실을 옥죄는 집주인을 마음으로 강간할 수 있었고, 계급과 차별을 벽을 부수고 재벌집 딸년을 범할수 있었다.』 라고 말하면 개뻥인거고 툭 까놓고 우리는 말초신경의 지배 하에서 말초신경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 할수 있는 것이 마스터베이션 외에는 없었다고 말해야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이야 택도 없는 이야기지만 유두하나 나오지 않는 ‘건강 다이제스트’만으로도 충분히 자위할 수 있었던 시절. 500번은 더 돌려봐서 이제는 저게 사람인지 바야바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폐품수준의 포르노 테이프를 봐도 하루종일 흥분이 가시지 않던 시절에 소위 ‘음란서적’으로 통칭되는 성적 판타지 소설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담보로 단백질과 테스토스테론을 앗아가는 사채업자였고 고리대금업자였다.
천박한 군사문화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고는 핏대선 노동문학과 일체의 정치색이 담길 수 없는 애매모호한 초현실주의(난 이문열이 대표하는 80년대 순수문학의 기저에는 초현실주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조롱조로...)문학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없었다. 꿈을 먹어야 하는 시기에 말초신경을 담보로 뇌로 가야할 단백질을 엉뚱한데 쏟아버린 지금.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어가 도피했던 환상의 세계는 또 얼마나 부럽고 행복해 보였던가 말이다.
오필리어가 문학으로 찾으려던 판타지와 내가 80년대를 살아낸 ‘황홀한 사춘기’까라의 판타지는 도피라는 측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도피하고자 했다면 현실에서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았어야 한다. 이 영화가 그토록 슬펐던 건 바로 현실과 머리를 맞출 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것이며 어디로 발버둥을 치던지 결국 부조리한 세계에 남겨진 비틀어진 닭대가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평일날 교통사고로 죽어야만 보상금 7억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한 한 쪼다같은 가장의 불편한 아침 출근길에는 항상 판의미로와 황홀한 사춘기의 판타지가 교통사고로 끝났으면 하는 소망과 맞물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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