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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술을 살짝 줄이면서...

프라모델에 손을 댔습니다.

서른 넷 먹고나니 세상은 딱히 뾰족한 수 없이 그렁그렁하게 달린 걱정만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며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어릴 때, 책장 가득 채워 좋았던 독일제 탱크며 가리안 시리즈, 칸담, 마크두, 제타, 더블제타의 추억은 달밤에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아도 기억나지 않는 과거일 뿐이었습니다.

3년전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아카데미사를 방문을 때 일입니다. 군사, RC 등으로 꾸며진 제작팀 인원은 5분 내외, 그분들 모두 프라의 꿈을 실현시킨 장본인들이었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면서 모두 취미를 잃으셨거나 취미를 바꿔버렸더군요. 네, 삶은 그렇게 팍팍한 거였습니다. 떡볶이를 철근처럼 씹어먹어도 기억나지 않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꿈의 8할은 사람키만한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쳐들어 오는 내용이었습니다. 5층짜리 만만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다보면 아파트는 어느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바뀌어 있었고 윙갈-지와 윙갈-위는 날 조롱하듯 하늘위를 유유히 날면서 변신중인 가리안과 함께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씨.발.놈. 야속하더군요.

6개월전 달롱넷이라는 홈피를 처음 찾아 들어왔을 때, 맨 처음 생각났던건 국민학교 때 꾸던 그 꿈이었습니다. 꿈처럼 프라는 내 최초의 취미이자 이상 같은 거였는데 싹 잊는게 어른이 되는 건줄 알았습니다.

퍽퍽한 삶인데 찰리의 초콜릿 공장만 같았던 아카데미 본사의 개발진도 포기한 프라의 꿈을 내가 왜 꿔야되는지하며 헛헛하고 씁쓸하게 돌아선 적도 있는 내가 말이죠.

두 달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넉달전 또 우연찮게 건담넷에 찾아들어가 무조건 반사처럼 막투2.0과 니퍼, 퍼티, 제타2.0을 질러버린 내 자신을 봤을 때, 그리고 다음날 바로 배송된 막투를 벗길 때 내 피 속에는 2%쯤 폴리에틸렌과 ABS, PVC가 섞여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피는 파란색이야"라고 말할 특권의식은 없습니다만 "내 피에는 PVC가 섞인거 같아"라고 말할 자신감은 생겼습니다.

일단 질르고 보니 먹선 칠할게 갑갑했습니다. 눈팅으로 봐오던 달롱넷 게시판 자료를 찾다가 몇일전 게시판이 닫혔길래 "씨발, 드디어 비공개로 가나보다"하고 쥔장을 갈궜습니다.

넉달동안 달랑 세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릴적 그 꿈에 가려면 10개는 더 만들어봐야 겠습니다. 참, 발로 만들고 발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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