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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 이후의 한석규는 영 불편하다. 당대의 배우소리 듣던 그에게 관객의 기대감은 과거의 영광속에서 그를 옭죌 뿐이다.
올가미는 몸부림칠수록 죄어온다.
그에게서 다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각인되었고 에너지는 낭비된 감이 없지 않다. 하다못해 커피광고만 좀 줄였어도 과거의 잔상을 좀 덜 수 있을텐데... 돈이란게 그래서 무섭다.
돌아가서,
정직하지 못한 영화 외적인 문제를 하나 더 짚어보자. "주홍글씨"는 스릴러, 로맨스 영화로 강조되었다. 거기서 김 빠진다. 이 영화 치정극이다. 치정극인데 선명하게 날이 선 외형적 장치를 갖는 치정극이 아니라 인물간의 대화와 몇몇 설정만으로 또아리 틀어나가는 심리극에 가깝다. 여기서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던 일반 관객은 똥씹은 표정으로 변한다.
영화로 들어가서,
영화는 최초의 정보에서 정보제공자의 입장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시선(혹은 정확한 사실에 의한 시선)으로 전이 된다. 경희(성현아)가 왜 팜므파탈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성현아의 이야기는 잘못 만들어진 소설의 액자구조처럼 겉돈다. 남편과 남편의 주변부 이야기는 설득되기 전에 잊혀진다. 큰틀에서 성현아의 이야기는 겉돌고 기훈(한석규)의 역할은 영화의 큰 흐름과 별 관계 없다(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성현아와의 치정극이 얽히길 바랬던 관객들은 헛헛한 결과에 뜨악한다.
내용면에서(스포일러 있음. 경악스러울 정도니 보실분은 스톱),
전체적으로 한석규를 규정하는 몇몇의 필모그라피와 CM(난 이게 한석규를 옭아매는 가장 큰 약점이라고 본다. 우리가 아직도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를 가정하고 영화를 보는건 영화의 잘된탓도 있지만 그 이미지를 차용해 끊임없이 커피를 사라고 주문한 CM탓이 더 크다.)은 그의 운신의 폭을 사정없이 좁혀놓았다. 그의 연기력을 왈가왈부하며 잘했네 못했네를 이야기하는건 의미 없다. 이미 우리 머리속에 구축된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그의 연기력을 판단할만한 객관적인 잣대를 잃어버렸다.
이은주와 엄지원, 발성불량의 이 두 쌍두마차는 대본 안에서 대본 밖을 넘지 않는 수준의 연기를 해줬다. (자 둘다 이쁘니까 별세개)
성현아, 이 캐릭터 캐스팅 승락한 매니저가 나쁜 새끼다.
우린 감독의 고민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단지 감독의 고민에 동의하면 관람으로써 그 동의의 표시를 할 뿐이다. 개인적인 고민의 소구대상을 비겁한 홍보로써 관람객에게 강제하는 것. 이거 나쁜 일이다. 하물며 영화란 매체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이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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