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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은 추석의 키워드였다.
설날처럼 세뱃돈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성룡이 있었기에 만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진짜 아파하고 진짜 웃기고 진짜 멋지고 진짜 날라다녔던 성룡이었다. 요컨대 13살의 입에서 나온 '진짜'는 최상급 형용사였고 성룡의 연기는 여타 다른 잡다한 형용사 따위가 나불거릴 수 없는 영역에 속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헐리웃은 턱시도, 80일간의 세계일주, 메달리온을 통해 우리에게서 성룡을 앗아갔다. 우리가 원하던 성룡은 거기 없었다. 성룡은 장끌로드 반담이나 아놀드슈왈츠네거가 아니었음에도 헐리웃은 성룡이라는 전무후무할 재료를 CG와 아크로바트를 통해 망쳐버렸다. 참, 깔끔하게도 말아먹었다.
이젠 더이상 성룡을 기대하지도 않고 추석을 지낸다. 그냥, 돈 버는 자 티 내느라고 선물 사고 그냥, 먹고 사는거 추하게 안보일라고 인사하러 다니고 그런다. 사이사이 추석 특별영화 틈바구니에 성룡이 간간히 보이지만 고스톱 판뒤에서 무성의하게 들리는 포커스 아웃된 외경일 뿐이다.
중국반환 이후 홍콩은 성룡에게 미안했을 거다. 성룡은 헐리웃에서 일군 자신의 성공이 반만 원조팬(사실 그야말로 이소룡이후의 범 아시아 스타 아닌가?)을 위했다는 것에 미안했을 거다. 자신을 키운 홍콩에 어쨌건 원죄처럼 미안한건 오래 남아 있을거다. 성룡 착하잖냐.
뉴폴리스스토리의 진국영은 마치 홍콩에게 미안했던 성룡의 페르소나 같다. 1985년부터 시작된 폴리스스토리의 미학인 아니 성룡이 지금까지 성장한 원동력이었던 건강하고 육체적인 웃음이 사라졌다. 비통하고 슬프기만한 이 이야기는 중안조 때보다 원숙하고 늙은 성룡의 비애가 더 짙다.
그러나,
너무나도 슬프게도
이 영화는 신파의 굴레를 결국 벗어나지 못한다.
철없는 10대들의 우발적인 범행, 그리고 게임을 하듯 벌이는 범행의 동기는 김형곤 유행어처럼 화면이 나가기도 전에 입속에서 중얼거리고 있다. 김학래가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거리자마자 양종철이 일어나 "밥먹고 합시다"를 외치는 순간 회장이 일어나며 "이러니 잘 될 턱이 없지"하면서 "그나저나 잘 되야 할텐데~"를 외치던 대사의 8할이 유행어로 채워진 회장님회장님 우리회장님이 이런식으로 오마쥬 될 수도 있다니.... (나는 안봐도 비디오 수준의 줄거리를 갖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착한 성룡을 봐서 이렇게 둘러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쨌든 나이를 먹은 성룡은 이제 그 화려했던 몸놀림과 재기가 짐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아직도 스턴트와 아크로바트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성룡이 풀어내야 할 숙제이긴 하다.
우리도 성룡을 액션배우가 아닌 나이를 젊잖게 먹은 또다른 성룡으로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좀 쿨하게 그가 젊잖고 멋진 또다른 역으로 변신해 보는 걸 기다리는 거 말이다.
그는 20여년의 추석을 즐겁게 해준 공로도 있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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