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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라이즈가 보여준 '낮선여자 원나잇 스탠드 공략집'은 9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떡진머리에 정체불분명한 지역정서란 핸디캡을 와꾸만으로 몸빵하는 수준의 외모라는 걸림돌이 있긴 하다만...
비포선셋이 나온 이후, 9년전 비포선라이즈의 이상포장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원래 느끼해서 안봤었네, 시간이 없었네, 유치한 사랑싸움에 낄 수준이 아니었네 등등등.... 블코나 테터툴즈에 포스팅되는 글들은 거의 과거에는 어땠네~식의 회상조를 (엄밀하게 얘기해서 과거형 어미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후렴구로 차용하는 법률이라도 새웠나보다.
사실, 비포선라이즈의 가장 큰 공감은 제시의 작업롤에서 기인한다. 셀린느에게 첫작업구라를 떠올려보라! 앞자리 싸우는 부부에 심란해하는 셀린느와 공통의 정서를 부추기며 자연스레 식당칸으로 이동시키는 능력은 수준급이다. 셀린느를 빈에 내리게 만드는 절묘한 시간차 공략도 여자없는 불행한 솔로들에겐 줄치고(아니, 반복재생으로) 보아야할 스킬중 하나다. 뿐이랴, 열몇시간 이내에 셀린느와의 로맨스를 만드려는 제시의 가공한 전술들은 잠언수준의 뻐꾸기 어록을 만들어내며 런닝타임 내내 밑줄긋게 만들지 않던가?
고로, 비포선라이즈를 과거에 어땠네 식으로 폄훼하는 작금의 포스팅에 분노를 표하는 바다. 아직 산날 보다는 살날이 많을 터이고 사랑한 날보다는 사랑할 날이 많을 터이고 인생은 꾸준히 미완성일터.
원나잇 스탠드 테크니컬 바이블인 비포선라이즈가 왜 얄팍한 과거로의 재귀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어야 하느냔 말이다. 요컨대 두꺼비집 놀이 하는데 포크레인 동원한 꼴이 아닐 수 없다.
9년의 세월은 비포선셋을 선물했다.
구질구질한 인생을 숨기고 사는 뉴요커들의 "구뤠이~ㅅ"으로 시작되는 답변인사처럼 제시나, 셀린느 모두 인생의 비루함을 솔직히 얘기하지 못한다. 맞아, 스무살에 맞는 작업스킬이 있고 서른두살에 맞는 작업스킬이 있는 것 아닌가? 서른두살에 맞는 작업스킬은 서로의 비루함을 보듬는거고 그게 인생이라며 툭, 털듯 내뱉는거고 그런거지.
9년전 비엔나의 한 골목에서 셀린느가 언제 정현종의 시를 훔쳐봤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섬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9년이 지난 해질녘에 둘은 그 섬이 코타 키나발루나 사이판의 에머랄드 빛 강렬한 태양의 아름다운 섬이 아니라 비루하고 남루한 준설기로 여기저기 패인 밤섬 같은거란걸 공감해 냈다.
그리고 그 너덜너덜한 것 같은 인생은 훗날 또 아름다운 철없음이 될거고 아플거고, 슬플거고 그게 또 죽기 전에야 기억에 몇초밖에 남지 않을 서른 몇살 즈음의 기억 한토막쯤으로 남을 거다.
3줄요약
비포선라이즈는 아직도 유효한 원나잇 스탠드 테크니컬 바이블이다.
비포선셋은 9년만에 우연찮게 다시만난 그녀의 재 원나잇기다.
9년이 지나면 작업스킬도 바뀌어야 한다.
깜짝 선물 : 셀린느가 비포선셋 마지막 부분에 헛헛한 엔딩스크롤에 대한 선물처럼 제시에게 불러준 노래. 노래제목은 그냥 왈츠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지인이 설명해주셨지만 돌고래 아이큐 멤버의 수장인 나로서는 기억할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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