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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엘빈토플러가 정보가 곧 권력이 된다고 한 말이 내게는 5년 가까이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애플 II 컴퓨터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금언처럼 들렸다.
엘빈토플러가 정보가 곧 권력이 된다고 한 말이 내게는 5년 가까이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애플 II 컴퓨터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금언처럼 들렸다.
어머니가 혜안이셨던지 속아주셨던지간에 나는 첫 IBM 모델을 가질 수 있었다.
엘빈토플러에게 진 빚을 그의 저서를 사면서 지금도 조금씩 메우고 있다.
대만산 조립PC였던 그 모델은 무려 20메가의 하드와 MEGA VGA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STREO Adlib을 탑재하였고 당시로서는 최고사양 Spec인 1M 램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뿐이랴?
80칼럼 도트 프린터는 한동안 내 여동생 레포트 A+ 선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280BPS MNP 모뎀이었다.
천리안의 전신인 피씨서브와 하이텔의 케텔의 통신환경하에 120BPS가 한계인 케텔을 과감히 버리고 2800을 온전히 지원해주는 종량제(!!!!) 피씨서브로 간 대담한 내 선택은 20000명 통신인구 시대를 온전하게 경험하게 해준 선택이었다.
'01410'은 훗날 이야기였고
그 이전에는 일반 전화번호와 동일했다.
물론 요금도....
서울 접속자 때문에 계속 통화중일 때는 경기도권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낸 채팅"
"조낸 영퀴방"
"조낸 게시판질"
새로운 세상,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컴퓨터 문화에 흠뻑 젖어들었을 무렵, 무엇 하나가 참 허전했다. 그 때는 그게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리고 곧 그 허전함은 잊혀졌다.
1994년 군대를 갔다.
1996년 제대를 하고 이제는 늙어버린 나의 애마 AT기종을 더이상 끌어안고 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붙박이 장에는 아직도 애플II가 먼지를 먹고 자고 있었다.
모뎀은 9600에서 14400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AT에서 윈도우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해 가을 나의 AT를 청산하기에 앞서 애플II를 버리기 위해 본체를 달랑 들고 나왔다.
마지막 인사는 해주고 가야지.
TV에 연결해 부팅을 했다.
"애플베이직으로 '안녕' 이 단어 하나를 만들 수 있을까?"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도 못하는구나."
키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5년여를 알수 없는 허전함에 보낸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었다.
키감이었다.
다음해 여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수많은 고민을 해야했지만 IBM 호환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당시에 발매된 애플 m2980 키보드는 예전에 내가 갖고 있던 애플II의 향수를 달래주기에 딱 맞는 그 무엇이었다.
외면했다.
키감이 모든걸 커버할 수는 없기에...
이후, 체리, 아론, 세진, IBM으로 넘나들면서 멤브레인, 기계식 수많은 키보드와 쫀득한 만남으로 행복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첫사랑 잊지 못하는 것처럼 첫 키감에 익숙한 내게 그건 강렬하고 지울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리고 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쉽게 잊혀졌다. 쉽게 잊혀졌고 다시 기억나지 않았다. IBM X600의 키감에 홀딱 반했고, X31의 키감과 배열에 완전히 적응했다.
한 때의 풍랑과도 같은 흔들림은
'과거일 뿐이지'
'훗, 사치스러운....'
그렇게 치환되었다.
얼마전 달롱넷 게시판에 우연히 그때 봤던 M2980이 보였다.
갑자기 97년도 때의 갈등이 생각났고 imate만 있으면 연결해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달랑 리플 하나로 '와, 갖고 싶었던거..."라고 적었으나 내게 오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난, 이제 키감 정도는 체념할 수 있는 여유있는 나이니까.
X31에도 아주 만족하니까....
몇일전 연방군 형님께 쪽지가 왔다.
"주소불러줘"
최근 결혼에 애까지 생기신분을 달롱님이 테러 주범으로 지목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자
"사제폭탄이나 유독가스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소를 보내드렸다.
appleadbkeyboard m2980
어제, 신기루처럼 내 손에는 올 것 같지 않던 m2980을 받았다.
떨리는 기분으로 노랗게 변색된 그놈을 보니 1996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버린 그 알록달록한 애플II가 생각났다.
"기계에도 인연은 있나봐."
imate가 6만원. 그나마 용산에도 없는 것을 찾으러 어제부터 웹사냥
내가 달롱넷 덕분에 10년 전의 기억까지 감동으로 받을지 정말 몰랐다.
이 글을 달롱넷(www.dalong.net) U.N.T.SPACY님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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