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건은 딴지 영진공에 지좆대로 발령 받은 후 첫번째로 쓴 글이고 짤구님에게 시원하게 빠꾸 먹은 글이다. 뭐 내가봐도 별 재미는 없다만 대한민국 B급영화시장의 존폐를 막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찮은가 말이다...뭐 가당찮타고?
사족 : 빠꾸먹은 글이다 당연히 후편은 쓸 생각조차 않했음.
에로물 깊이보기
에로물이라면 흔히 ‘씨바, 할일도 없는데’라면서 보는 킬링타임용이거나, 딸딸이 보조기구이거나, 빠굴 흥분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에로도 당당히 커머셜아트의 한 장르이며 제작자의 고민과 번뇌와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에 본우언, 이제 에로물 깊이보기의 첫걸음으로서 에로적 화자에 대해 썰하려 한다.
본 문건은 윤석산님의 [시와 시학]을 거의 표절했음을 미리 밝힌다. 씨바.
에로적 花子란 무엇인가?
감독은 빠굴적 충동이 떠오르면 그것을 곳바로 영상화 하지 않는다. 먼저 그에 적합한 에로배우를 선정하고, 자신이 하고싶은 체위를 그 그 인물에게 주입하며, 빠굴에 대한 자기 태도와 어조 역시 그 에로배우에 맞게 변용한다. 따라서 에로적 담화에서 의미적 국면을 산출하는 주체는 에로적 화자라고 할 수 있다.
부연 : 화자가 왜 화자냐구 따지지말자. 이수만 옹은 립싱크도 장르라고 하더라... 화자는 張三李四로 뭉그려지는 일반 여염집의 그것처럼 에로영상물의 여우의 보편적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花子로 만들어진 것이다.
1. 감독과 화자와의 관계
빠굴에서 성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의 주체인 <花子> 그 이야기 내용에 해
당하는 <오입(sex)> 그 성욕을 받아줄<머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감독이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메타적 방식이 아닌 다음에야 감독은 모두 화자와 머슴을 설정하고 그들끼리의 오입을 주고받은 다음, 시청자가 엿보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이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위 도표에서 ()부분은 담화 과정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단위들이다. 그리고 []부분은
논리적으로 가정한 단위들이다.
그런데 작품 속에 설정된 화자와 실제 감독과의 관계는 에로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에로물이란 감독의 恨(조루, 다양한 체위, 부적절한 관계 등)을 영화적 기법으로 승화 시키기 위해 허구적으로 인물을 내세우고 관객으로 하여금 지켜보도록 하는 양식이라고 주장하는 조지주의 시론에서는 <감독애인≠화자>로 해석하는 반면에 감독이 직접 텍스트 속에 등장하여 자기 빠굴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하는 낭심주의 시론에서는 <감독애인=화자>로 해석한다.
그러나 화자를 완전한 허구의 산물이나 감독의 애인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영화를 찍을 때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여 허구적으로 꾸민다 해도 그것은 결국 감독이 자신의 빠굴생활을 바탕으로 再構한 것에 불과하며, 이와 반대로 사실로 쓴다 해도 그넘이 강쇠가 아닌 이상 20~30분씩 롱타임으로 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자는 감독 그 애인의 반영도 허구적 존재도 아닌 조또아닌 존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애인>과 작품 속에 가상적으로 설정되는 <함축적 애인>은 어떤 관계일까? 그리고 또 <함축적 감독>과 그가 캐스팅한 <화자>는 어떤 관계일까? 먼저 <실제 애인>은 에로감독의 실제 애인 그 차체이며 실존적 존재이다. 그러나 감독이 원하는 구상에서의 <함축적 애인>은 실제애인과의 관계에서 충분치 못한 성적교감의 아쉬움을 풀어내는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화자>는 함축적 애인의 실제적 표출로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자칫 반실존의 인물인 화자를 <함축적 애인>과 혼동해 스캔들, 혹은 불륜이라는 영화 외적인 기법을 돌출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념하여야한다.
다음장에서는 화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올리도록 하겠다.
'전방위 위촉위원 겸 성영상 진흥위원회 수습위원 차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