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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여행의 딴생각

욕심

한 20년은 출쩍 넘었을 코오롱 빛바랜 파란 텐트에

깔끔한 스트링으로 한껏 각잡힌 루프.

대학교 산악부였을 때부터 썼던듯한 낡은 황동버너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물,

연신 안경 고쳐쓰며 책읽는 아내 귀찮을까봐
끓인 물 받아 봉다리 커피 탄 후
아내 뒤로 돌아 들어가는 머리 희끗한 어르신

지직거리면서도 흥얼거리게 만드는 낡은 라디오.
언제 들었는지도 기억 안나는 오래된 AM 방송

곰삭은 김치가 담겨있는 밀폐용기와
너무나도 친근한 밥그릇.
그리고 한쪽에 돌 괴어 수평맞춘 작은 테이블.

저녁에 되면 눈 부시지 않게 야트막하게 피어오르는 광산등과
고즈녘하게 막걸리가 담기는 잔.


황혼에 든 어르신 두 분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부엌 싱크대 보다 비싼 IGT에, 결로 맺히지 않는다는 면텐트에, 겨울에도 끄떡없다는 액출버너에, 거위털 100%라는 필파워 어마어마한 침낭에, 광량 500캔들 파워라는 랜턴에, 왠만한 중고 냉장고 가격같은 아이스박스에, 자연까지 와서 굳이 만화 틀어놓는 노트북에, 블루투스는 물론 정격출력이 어마어마하다는 휴대용 스피커에, 짐이 넘쳐 어쩔 수 없이 바꾸는 자동차에, 그을음 냄새안나고 불꽃 예술이라는 난로에, 등배길 걱정없는 2미터*2.4미터 짜리 쿠션에 장비를 이고지고 살았던 내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지면서

내가 캠핑을 떠나 왔던 건가, 
주말이사라는 신종 레포츠를 하고 있는 건가,
욕망채우기 시합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물음을 되내이다

이내 한숨 한 번 또 쉬어 봅니다.





남의 시선 때문이었는지
나의 욕망 때문이었는지


나는 캠퍼고
1년내내 땡볕에서 일하다 굳어진 몸 이끌고 1년에 단 하루, 
고단한 몸 이끌고 계곡 들어와 막걸리 한사발에 
고된 노동이 서럽고 다난한 팔자가 서러워 
밤늦도록 1년의 그 달콤한 하루를 즐기는 사람에게

행락객이라 말하며

매너없네, 사라져야 하네 말했던 내 자신의 허울이
참,
독하고 모질구나. 싶어

나는 왜 캠퍼고 너는 왜 행락객이며
도대체 행락객이라는 단어는 무슨팔자로 저리 매도되나 입이 씁니다.

또, 그 캠퍼라는 단어에는 도대체 어떤 기준과 자긍심이 있어야 할까요?








후, 텐트가 저게 뭐야?
저건 1년쓰고 버리는거야
이런 코펠은 눌러붙어
참내, 겨울에 이 버너는 못쓴다고
이런 불로는 고기가 익었는지도 안보여
참내, 이정도는 되야 어디서 먹어준다니까


결혼 11년동안 매달 가계부를 쓰면서
월말, 50원만 비어도 고민하던 아내에게

전, 참 나쁜 남편이었네요.

이기적인 '캠퍼'였으며

아집 가득한 욕망덩어리였습니다.





이왕 산거,
환갑때까지 고쳐쓰면서 반성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여보, 옵티머스 200 말이지. 이건 정말 내 마지막 테이블 랜턴이야.
스웨덴 감성의 빨간 후드는 당신이 봐도 정말 아름다울거여요.
그리고 저 하얀 범랑갓은 당신 얼굴 같아.

이제 반성하고 정말 더이상 살 건 없어요. 여보. 
더이상 트레일러에 들어갈 자리도 없으니까 

이걸 마지막으로 할게. 어차피 랜턴박스가 2개들이라 하나 비워 놓는 건 낭비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할아버지 황동 버너 말이야, 그거 옵티머스라니까. 
그거 아마 못해도 두달 아르바이트는 해야 저거 살수 있었을꺼야.

그러니까 나 저 할아버지 나이만큼 아끼고 쓸 테니까 제발. 이거 하나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