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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비루한 기억들이 고개를 쳐드는 날이 있다. 내친구 준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생일주에 겨워 성동구민회관 앞마당에서 의경이 지나가는 것조차 무시하며 똥을 쌌던 1992년의 가을이 그러한 기억이고 우리 아버지는 4번째 부도를 통해 전면적인 사회활동 유보라는 가족들의 강압적 요구를 수용해야 했던 1985년의 봄이 그러한 기억이며 나는 1988년 가을의 도색 만화를 그리다 담임선생님께 걸려서 교무실 복도에 나의 그림과 같이 네시간 동안 벌서야 했던(내 중학교는 남녀병학이었다) 아픈 기억이 그것이다.
주성치가 진짜 웃긴 이유는 그 황망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황망한 상상력으로 친다면 저 1984년 작 “이영하의 투명인간”을 필두로 예전에 Dj.han님이 고발하신 “북두신권” 한국판을 비롯, 에~ 거슬러 올라가자면 태국공주와 한국 첩보원의 홍콩을 가장한 이태원 첩보스릴러 “거미줄”(이 작품은 네이버 영화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는다)의 신산한 감정을 우려내는 황망함을 따라갈 수 없다. 일견 황망한 상상력으로 보이는 주성치‘식’ 표현 속에는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비루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차 있던가.
주성치를 찬양하는 개그의 접점에는 페이소스 가득한 루저의 비애가 가득하다. 그의 개그는 승자의 노래가 아니다. 오줌싸개완자의 넘치는 탄성만큼이나 오버된 그의 연기는 철저히 못난 놈의 자괴감에서 비롯되는 알량한 소시민의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하루를 연명하기도 힘든 넝마주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명함이 그 자존심의 본질이고 학교를 잡입해 들어간 경찰이 교과 학습 자체를 외면함으로서 “나는 경찰이니까요”를 말없이 웅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조금만 솔직해지고 조금만 비겁해지고 조금만 타협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비겁하게 합리화 시켜나가는 기성세대의 자화상은 실상 한꺼번에 비겁해지는 주성치와 무엇이 다를까?
여자를 꼬시기 위해 매달 구입했던 [최신 힛송 모음]이나 그 뒤에 달라 붙은 펜팔 주소록을 뒤적거리던 우리들이나 여래신장을 통해 세상의 구해보려던 ‘싱’이나 한치 다른 점이 무엇일까?
여래신장은 분명히 [최신 힛송 모음]에 나오는 비틀즈의 Hey Jude를 과감히 “여보게 주드”로 해석해내는 절륜 만큼이나 싱에게 한껏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고 우리가 처음보는 여자 앞에서 “헤이주드~ 이건 해석하면 여보게 주드~ 이렇게 해석될 수 있어”라고 심지다방 미스김 야쿠르트 시켜주며 똥끼마이 잡는 것처럼 ‘싱’은 놀림 받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심지다방 미스김의 경탄어린 눈빛세례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린 그런 똥끼마이를 동경하며 살고 있고 그 똥끼마이의 저급함은 오봉문화 가득한 우리 사회의 문화의식, 성의식, 사회의식 속에서 애어른 할 것 없이 성업 중이다.
보면서 쪽팔려지는데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오는 건 주성치영화의 핵심이고 오늘 “쿵푸 허슬”에서 보여주는 주성치의 힘은 그런 면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뒤돌아보면 벼멸구같은 비루한 인생에도 봄날이 올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웃음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별 다섯 개를 주어야 하는 평이 있다면 난 꼭 여섯 개를 넣어달라고 하고 싶은 영화다.
PS. 이거 말하면 스포일러 일지 모르겠지만 쿵프허슬 최고의 장면은 주성치 어깨에 박힌 백미러였다. 이 것 때문에 거의 10분간 웃느라 영화를 못봤다. 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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