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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호접지몽

"그러니까, 권력을 유지하는 보조 수단으로 예술이 철학을 먹는거지."

"그래서 내가 권력의 하수인쯤 된다는 거?"

그녀의 어깨에 매달린 오보에가 살짝 쳐졌다.

"18세기 인간의 해방을 노래하던 종교가 식민지 지배도구로 전락하는 건 알지? 아, 전락이 아니지. 원래 그런거지. 예술도 마찬가지라니까. 기호와 상징으로 덮여있는 예술은 배타적인 사회의 암묵적인 입장권 같은거라니까."

"클래식도 서민들이 좋아했다니까, 오빠. 아마데우스 안봤어?"

"그건 사업화가 진행되면서 그렇게 바뀌어간 거고..."

"그래서? 그럼 나, 이거 때려치우면 되는거야?"

"아니, 우린 권력의 단물을 영원히 빨아먹게끔 교육받아왔어. 자, 소주 일잔 단물 빨듯이."

"가뜩이나 졸업하면 어떻게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학원 강사가 되거나 악단에 들어가거나 아냐? 학교에 더 붙어 있던가..."

"후, 교향악단 이런데 들어가는 거, 사시 보는 수준이야."

"그럼 차라리 사시를 봐라."

"죽는다."

술을 강권하는 것은 폭력이다.

술을 마시게끔 감정선을 조절하는 것.
핵심은 거기에 있다.

뇌하수체의 뉴런들이 일제히 기립 기동한다.

회기역에서 가장 가까운 숙박업소를 서치한 후
4가지의 이동수단과 거리를 가늠한다.
이 곳의 술값을 정산 후에
숙박업소에서 쓰게 될 와인, 아이스크림, 요플레의 구매가가 계산되고

할증 택시비와 내일 먹을 점심값이 남을지를 가늠한 뒤

다음날 9시 수업에 빠져도 F가 되지 않을지를 고민한다.

2초.

"나가자."

"응"

금요일 밤. 12시.

회기역에서 청량리역으로 도열해 있는 모든 숙박업소의 방이 다 찼다.

용기를 내어 "고황산으로 올라가볼까?" 하자 날라온 것은

강력한 왼쪽 싸대기.



"너, '섹스'피어가 결국 장자 카피쟁이였다는 건 아냐?"

"몰라."

"죽느냐, 사느냐. 이게 문제다. 피뭍은 울부짓음의 한을 목졸라 참아야 하나? 아니면 이 칼을 빼어들고 날뛰는 피의 춤을 출 것이냐?... ... 죽는다. 잠잔다. 다만 그뿐 아닌가? 잠들면 모든게 끝이 아닌가? 그렇다면 죽음, 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열열히 원해야 할 생의 극치가 아닌가? 죽는다. 잠잔다. 그럼 꿈도 꾸겠지? 이게 문제다."

"근데?"

"장자, 호접지몽이잖아. 시발. 이빨은 다 넣어 놨는데 잠잘 업소가 없다는 거... 꿈이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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