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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황홀한 3주를 준 대표팀에게 감사 드립니다. 2002년은 기적이었습니다. 흙바닥에서 공을 차고 슬라이딩만 하면 화상을 입는 효창구장에서 시합을 하던 선수들이 월드컵 4강이라니요?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16강에서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고 표효하던 때, 안정환이 결승골을 넣고 기절했을 때, 아, 홍명보가 처음 화면에서 이빨을 보이며 웃었던 마지막 승부차기...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우리는 강했습니다. 똑같은 감동을 작년 베이징에서 경험했지요. 아, 쿠바와의 결승전이 TV드라마였다면 승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을 겁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박찬호, 이승엽, 박진만이 줄줄이 빠진 대표팀, 다리마저 불편한 노감독이 이끄는 별볼일 없는 대표팀이 준우승까지 했습.. 더보기
1983년도의 기억 [사진은 짤구님이 찍은 나뭉님의 야구공....당근 불펌이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교3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신길동 우진아파트 16동 광장은 우리의 홈그라운드였다. 수없이 깔린 지뢰밭처럼 베란다 창문이 진열되었고 우리는 덕분에 야구게임의 공인구는 낫소 테니스 볼이어야 했다. 당시 야구공은 몇가지가 있었는데 홍키공, 코르크볼(이건 주로 사인볼에 쓰이는 장식용 야구공이다) 경식 야구공, 준경식 야구공, 그리고 우리처럼 아파트 광장에서 게임을 할 경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쓰이는 테니스볼 등이었다. 1983년. 대길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나는 9회까지 단 2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신길6동의 에이스로 등극한다. 당시 1:0이라는 기록적인 게임이 나왔는데 그 1점도 1회말 2사 2,3루에서 빗맞..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