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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포르노의 진짜 폐해 * 술먹고 쓴 글이기에 비문 오타가 너무 많아 대충 손질합니다. 아...그 포르노를 향한 그나긴 순간의 여정이여 1985년 뽈노를 처음 보다. 신대방 사거리에 있었던 한 만화가게(가게명 없음...그냥 만화책, 무협 대본소였음)는 세 명이 400원 네 명이 300원을 주인아저씨에게 헌납하면 책받침에 색연필(그래야 리스트 업이 될 때마다 지울 수 있다)로 적어 놓은 수종의 삐끕 비디오를 보여주던 곳이었다. 물론 근처의 다른 만화가게에서도 비디오를 볼 수는 있었으나 다른 만화가게의 경우 무조건 선불에 정해진 비디오를 정해진 시간에 상영하는 이른바 순번제 형태였기 때문에 나의 날카로운 안목과 분초를 나누어 생활하는 칼 같은 시간관념 상 별 메리트가 없었다. 나의 단골이 된 이 만화가게의 더욱 큰 매력은 50원 .. 더보기
고맙다. 고삼때 난 이미 KAPF를 결성했다. 코리안 아튀스트 프로레타리아 페도레이숑이 아닌.. 코리안 아메리카 뽀르노 패밀리로 말이다. 1200bps 한통 단말기가 대세인 시대에 고작 다섯프레임의 그림을 엮어 허큘레스 그 노란 커서 사이로 보이던 난잡한 화면은 프론트 로딩 방식의 삼성 VHS 골드 다이아몬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400본 라인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는 비록 불법카피된 닳고닳은 소스에 기원한 장애를 훌륭히 극복하고 나의 후두엽 하층에 깊이 저장되었다. 그무렵 나의 왕성한 정욕을 못마땅해하던 한 뇬은 나의 깊은 고뇌에서 나온 "우리 섹스해볼까?"라는 외마디에 정신병자 취급을 하더라. 견강부회 10년 하고도 몇년이 더 지났고 내 책상 한 귀퉁이에는 단 한번도 보지 않고 구워만 놓은 포르노 씨디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