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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그러니까 나는, 스물 넷의 복학생이었다. 바람은 불고, 비가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공강의실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80%가 남자인 법대에서 볼 수 없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에버랜드의 가을도 즐거웠다. 나는 부추전을 잘했고, 그녀는 부추전을 잘 먹었다. 별 이유도 없이 누구들처럼 늘, 헤어짐은 있다. 그녀는 결혼한다며 전화를 했다. 군수 아들이라며 걱정없이 살거란다. 잘, 살아라. 나도 결혼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더 할 것 없이 아내와는 행복하고 아이와는 즐겁다. 머릿속에 스물네살, 비오던 공강의실은 유독 지워지지 않는다. 노래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더보기
황금연휴 4일간 집에 박혀 있었다. 비난리 통에 뭔가 나가서 즐긴다는 것, 어불성설이고 일년에 몇번없는 연휴를(게다가 명절같은 태클도 없다) 집에서 복지부동 하는 것, 가족에게 죄다. 동네에 비디오샵까지 거리는 200m 심리적 거리는 200km 양심을 팔아 먹은 댓가로 네 편을 영화를 봤다. 같은 밥 먹는 인간이 그러면 안된다만 내가 아는 편성팀장은 N자막팀 동호회 시샵으로 위안을 삼는다. (다행스럽게도 돈내고는 보지 않을 영화들이었다) 팔아먹은 PS2 생각이 나는 건 배터리가 엥꼬나버린 PSP를 본 직후다. * 사족 : 누질르면 '졸라'커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