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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173

아들이 말한다. 아빠, 일기는 왜써? 매일 똑같이 놀았는데. 네 영혼에 대한 반성을 하는거다. 응? 아들, 세상이 무한대처럼 있는게 아니라서 늘 같이 놀면 안돼. 언제나 새로운 놀이를 찾아봐. 혹,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새로운 친구들과 해봐. 오래된 친구들과 같은 놀이를 하는 거라면 같이 노는 친구의 새로운 면을 생각해봐. 그게 뭐야?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말자고. 그런데 아빠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게임하잖아. 맨날 똑같은 게임. 아들, 아빠가 언젠가 너에게 드넓은 아제로스 대륙을 가로지르며 전우를 위해 희생당했던 한 영웅의 서사시를 읇어줄 수 있는 날이 올거야. 그러니까 게임에서? 그럼 나도 네이버 쥬니어 게임하는 건 좋은거네? ... ... 자식 앞에서는 숭늉도 먹지 말자. 아내는 부자간의 대화를 들으며 콧방귀를 낀.. 2009. 7. 28.
아들이 다 컸다 작년까지만 해도 믿었다. 아들은.... 아빠 지금 뭐해? 응, 지금 아빠는 파워포스레인저 레드와 지구를 지키기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거짓말.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봐. (광주씨, 아들, 설명좀 해줘.) 안녕 수겸아, 아저씨는 파워포스레인저 레드야! 으아아아아아아~ 엄마, 레드가 나한테 전화했어!!!!! 아빠는 영웅이 된다. 지구를 구하는 우주전사들과 연석회의라니. 하루는 그렌라간의 시몬을 만나고 하루는 사오정과 함께 손오공의 만행에 대한 토론을 하고 하루는 원피스의 크로커다일과 함께 해양한국, 빛나는 조국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그리고 또 어느날은 격동 50년, 역사스페셜의 주인공과 인사를 한다. 아들이 특히 감격하는 건 여자 주인공들과 조우할 때다. 물론 목소리만으로 조우해야지. 하지만 만나면 끝나는.. 2009. 7. 21.
그해 겨울 바람이 불었다. 네대째 피는 담배는 입에 썼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의 어깨는 계속 들썩거렸다. "가는 사람은 가는 거다. 뭘 해도 잡을 수 없는 거다." "... ..." "여자가 그년 밖에 없냐. 이 개새끼야" "... ..." 여섯병 째 소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세상은 둘로 쪼개졌다. 아스팔트가 춤을 추는데 몸이 가눠지지 않았다. 그를 업고 인사동을 가로질러 현대 계동 사옥을 나올 때까지 그는 위를 게워내 실연을 토해냈다. 고갈비와 막걸리와 소주와 파전과 김치와 동태찌게를 먹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쓰디쓴 20대의 피고름이었다. 엎다가 지쳐 스페이스 잔디밭에 벌렁 누웠다. 새벽의 바람은 찼고 3주뒤 그가 그리워하던 여자는 그렇게도 어린 나이에 갑상선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전화가 온건 방금전. .. 2009. 6. 23.
노무현대통령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가 "내 마지막 재산이라곤 이 집 하난데, 집값 떨어지면 나 네신세 져야잖니. 그래서 이명박 찍을란다." 그말에 난 차마 어머니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역시 비루한 월급쟁이에 불과했으니까요. 제 식솔 챙기기만도 힘들었습니다. 촛불을 들고 탄핵을 반대하고, 용산의 참사에 울분을 터뜨리고 촛불을 들었지만 엄마를 막지는 못했어요. 제 명의의 집한채가 그렇게 무서운 거였습니다. 네, 이런일이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에게는 그 죄책감을 못버리고 항상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살 동안에 다시 오지 못할 대통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가 FTA를 비준하는 것, 파병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가 보여준 담대함과 신뢰는 믿어야 하는 거라고..." 당신은 최소한 .. 2009. 5. 25.
축하한다. 얄팍한 양심과 조중동.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되었다. 근데, 너희들이 이긴 거, 아니다. 아직 결과가 나온건 아니다. 너희들의 승리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너희가 노무현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습자지처럼 얇은 우리의 보잘것 없는 민주주의 의식과 이기심이 노무현을 몰아낸 것을 안다. 한 판, 제대로 떠보자. 2009. 5. 25.
나는... 노빠였다. 노무현을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한 만큼 증오했다. 근데,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난 한국 정치의 희망을 버린다. 니들의 잘난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가든 상관 없다. 니들의 주택대출, 아파트값, 그리고 니들의 주식이 더 중요한 거니까... 니들의 애들이 살아야할 정의 같은건 껌같은 거니까... 퉤. 그러길래 이양반아, 대연정도 할 배짱이면서 돈은 왜 받냐고... 마누라 단속은 왜 못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발. 2009. 5. 23.
그해 봄. 그러니까 나는, 스물 넷의 복학생이었다. 바람은 불고, 비가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공강의실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80%가 남자인 법대에서 볼 수 없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에버랜드의 가을도 즐거웠다. 나는 부추전을 잘했고, 그녀는 부추전을 잘 먹었다. 별 이유도 없이 누구들처럼 늘, 헤어짐은 있다. 그녀는 결혼한다며 전화를 했다. 군수 아들이라며 걱정없이 살거란다. 잘, 살아라. 나도 결혼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더 할 것 없이 아내와는 행복하고 아이와는 즐겁다. 머릿속에 스물네살, 비오던 공강의실은 유독 지워지지 않는다. 노래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09. 5. 11.
반항의 계절 "여보" "우리 애 똥냄새가 심해지기 시작했어" "여보, 유전이야" "옛날에는 향긋했는데..." "당신이 변태였다가 사람이 되는 거겠지" "죽을래?" "여보, 그거 알아? 인생은 슬픈거야." "..." "똥냄새로 슬퍼하기에는 울 일이 많아." "..." "이제 우리는 연애도 할 수 없는 중년이잖아." 아내는 문을 닫고 유치원 동창 엄마들이랑 술을 마신다며 밖을 나섰다. 10시 아이는 자고 있고 나는 와우에 접속했다. "형수님이 이시간에 게임 하는 것 봐줘요?" "인생은 슬픈 거니까..." 25인 낙스를 돌고 게임을 종료할 즈음 백세주 4잔을 마신 마누라가 돌아왔다. "여보, 그래도 우리, 연애할 때는 알콩달콩 했는데 말이야." "아직, 우리에겐 독한 똥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아들이 있잖아." "..." ".. 2009. 5. 9.
달란트 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에 에르메스 구두를 신고 나타난 경호를 본 건 어느 더운 여름날 토요일이었다. 그가 도피성 해외유학을 간지 8년만이었다. 그즈음... 줄리아나의 메인 웨이터들이 시두스로 빠져나갔고 얼라이브는 불이 났으며 토마토는 문을 닫고 돈텔마마가 중년의 성지로 떠오르던 그 즈음. 그룹과외는 돈이 됐다. 4명에 25, 5명에 20으로 한 달을 굴리면 어떻게든 100만원이 들어왔다. 1월부터 과외를 하면 3월까지는 놀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나이트사를 장황하게 읊었다. 3월부터는 선배들이 4년 전부터 모아놓은 중간고사 기출문제를 워드로 정리해 풀게 했다. 40등을 맴돌던 아이들은 20등 이내로 들어왔다. 모의고사는 당연히 오르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들에게 모의고사야말로 6개월 이.. 200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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