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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김남주(예술지상주의) 씹을 맛도 안나는 삶

by 그럴껄 2004.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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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지상주의

예술지상주의의 그것은 애초에
이승은 떠남의 세계였고 현실은 네미씹이었다.
그에게는 예술지상주의자에게는
문명은 파괴되어야 할 적이었고
자학과 광기와 절망이 삶의 전부였다.
그에게는 나이도 없었다
예술이라면 제 애비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이 예술지상주의였다
염병할! 그놈의 사후의 명성이란 것도
그에게는 부질없는 무덤이었다
예술이라면 예술 아닌 모든 것이
저주해야 할 대상이었다 쓰레기였다
부르조아 새끼들의 위선이 거만이 구역질나서 보들레르는
자본의 시궁창 파리 한복판에 악의 꽃을 키웠다
랭보는 꼬뮌 전사의 패배에 절망하여 문명의 절정 빠리를 떠났다
시에다 똥이나 싸라 침을 뱉고
대한민국의 순수파들 절망도 없이
광기도 없이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수석과 분재로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학식과 덕망의 국회위원으로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자르르 교양미 넘치는 입술로
자본가의 접시에 군침을 흘리면서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에끼 숭악한 사기꾼들
죽으면 개도 안 물어가겠다
그렇게 순수해가지고서야 어디 씹을 맛이 나겠느냐


김남주가 죽은 게 언제더라?
태우가 대통령에 당선 되던 해, 백기완 후보의 유세에서 그를 처음 봤다. 무학여고 앞에서 본 그를 훗날, 학교(경희대)앞에서 한번 더 보았고 학교마다 마련된 분향소에서 군복을 입은채로 딱, 두번 끄억 거리고 향을 올렸다.

김남주가 죽은 게 언제였더라?
꽃이여, 피여, 이름이여를 외치며 지잘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많은 것들 중에 난 왜 하필 사상에대고 했을까? 내 운동의 이력이 어이없게도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끝났던 기저에는 근본적으로 덜되먹은 인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찌똥마냥 사정도 모르고 지리는 내 모자란 오지랖에 누군 상처도 많이 받았겠다. 특히 어린 내 고등학교 후배들은 영문도 모른채 강요된 학습에 돌베개 학습서 삥뜯긴게 내내 억울할거다.

씹을 맛도 안나는 예술지상주의를 흉내낸 주제에
난 그래도 김남주의 이름에 똥칠을 하며 그를 추앙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추앙한 "척" 한거다. 열 몇살의 탐욕스러운 마스터베이션이 지금와서 쪽팔린건 이제는 닳아 닳아 누더기가 된 김남주 시의 절절함 때문이고 그건 바로 시의 힘이다.

김남주가 언제 죽었더라?
그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지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먹고 살기위한 이력은 쌓였고, 먹고 살기위한 기술은 생겼고, 먹고 살기 위한 구라는 늘었고, 더 잘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은 남았다. 권가야의 남자이야기에서 본 알량한 "남자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에 짐짓 심각해하던 이 얄팍한 근성이 김남주 앞에서는 여지없이 쪽팔리다. 그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자가 아니라 "신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자이기 때문이며 적어도 1980년대의 신념은 죽음따위의 도피처와는 견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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