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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풍경달다.....인연

by 그럴껄 200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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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달다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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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똥을 쌀 때 꼭 활자를 본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이 소년한국일보 강제 구독을 미끼로 이런 소리를 했다.

"니들 말이야, 10분이 정말 중요해. 하루에 10분을 그냥 쓰면 세월이 흘러 20년 30년 지나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거예요. 화장실에서도 그래. 하루에 10분 똥 싸는데 그 때 책을 읽어봐. 남들보다 10배는 많이 읽을거야. 근데...책은 분량이 많잖아? 그거 다읽으면 나중에 커서 치질이 생겨요. 그래서 어른들은 똥쌀 때 신문을 읽으시는 거야. 니들은 한자가 많아서 신문을 봐도 어린이 신문을 봐야해....나중에 커서 봐라. 똥쌀때 10분 아낀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그런거야."

나는 소년한국일보를 봤고 그 버릇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건 병이 되었다.

재수없게 지하철 같은데서 똥이 마려우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급하게 화장실을 갔을 때 가장 먼저 찾는건 휴지가 아니라 신문이다. 신문 파는 데가 없으면 버려진 광고 전단지라도 들고 가야 똥이 나오니 말이다. 한번은 핵폭발 총 폐업 정리라고 큼지막하게 써진 논노 고별전 전단지를 글자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는 짧은 챕터로 나뉜 책을 본다.

시는 똥쌀 때 좋은 목록 중에 하난데...
일단 몇번을 읽어도 좋은 게 그 하나고,
한페이지가 거의 한챕터로 구분되니
원할 때 끊을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 책값이 싸다.

똥 쌀 때 읽는 시집은 딱 정해져 있는데 보통 지식블럭을 목표로 한 건 똥이 나오다가도 들어가기 때문에 피한다. 정호승, 함민복, 이문재.. 이양반들 시는 내 똥타임 전용이다.


풍경 달다를 읽다가 내친김에 얼마전 정호승의 인연도 샀다. 이양반 시야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든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든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이거 내 정서는 아니다. 다만 이양반 시집 들고 똥을 싸면 똥이 말랑말랑해진다. 말랑말랑해진 똥은 말랑말랑한 심장을 만들고 이 말랑말랑한 모닝 똥을 싼 상쾌한 마음에 봉다리 커피 한잔 빨고 출근해보라. 교통방송에서는 오늘따라 차가 덜막힌다고 하고 동부간선도로에서 성산대교까지(내부순환로) 20분 이내의 타임이 딱 찍혀주면 절로 노래가 나온다.

"아으아~ 부르쓰~ 부르쓰~ 부르쓰~ 연주자여~ 이흐마으악을 멈추지히~ 마라으아요~"

아침과 상관 없는 노래라고? 천만에... 주현미 꺽고 넘기는 그 폼새가 꼭 내부순환로 S자 도로 타고 넘어가는 리듬이다. 60km 찍고 돌아가면서 불러보면 안다. 이게 얼마나 딱 맞는 구절인지...

날씨 조온나 좋고, 어제는 술도 안먹고, 눈이 말똥말똥하고, 왼쪽 네번째 발가락은 헐거운 양말틈으로 고개를 내밀라고 지랄을 하는데... 낚시가기 딱 좋다. 덕용 삼양(흥부)라면만 어떻게 구할 수 있다면 신갈 저수지에 좌대 하나 띄워서 베쓰라면잡탕에 구성진 빨간딱지 오프너로 따야 하는 (까르푸에 판다) 25도 원조 진로 하나 까야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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