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분노하고 아들은 복수를 위해 칼을 간다. 그러던 아들은 어느날 기인을 만나 절세의 무공을 익히고 그 무공을 통해 적과 대결하는데 대부분 이쯤에서 사랑이라던지, 武의 철학적 고민에 번민하나 곧 적의 어이없는 도발에 맞서 싸운다. 정의는 승리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나던지 그 마을의 유지가 되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70년대를 아우르는 대부분의 무협영화들의 공식이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갈등관계 삽입이 비교적 자유로우며(적의 딸을 사랑한다던지, 주화입마를 입은 몸의 고쳐주는 대가로 기인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던지 하는) 관객의 감정몰입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한다.
20세기의 끝무렵부터는 소위 영웅 영화에서 진부한 복수관계가 사라진 대신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부각되었다. 배트맨의 이중성은 어둡고 음침한 지하의 영웅이 겪는 내적 갈등이 어렸을 적 죽은 부모의 원한보다 컸고, 스파이더맨은 엇갈린 삼각관계로 괴로워했다.
소림축구, 홍콩의 코미디는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며 도시무협을 축구를 통해 발현시켰다. 어눌하지만 비범하고 착한 듯하지만 졸라 냉정한 주성치의 코미디는 절정이었고 쇼브라더스 절정의 70년대에 대한 오마주이자 무협이란 진지성이 더 이상 관객에게 어필할 수 없는 플롯이 되었음을 알린 경종이었다.
성룡이 그랬고, 홍금보가 그랬고 원표는 좀 덜 그랬다. 그들 3인방이 무협에 코미디를 덮입힌 장본인이 었다면 소림축구는 코미디에 진지하게무협을 소재로 사용한 시금석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이미 방전된 대본소 무협 플롯을 얼개에 소위 21세기형 영웅 스타일을 첨가하고 주성치 계열의 캐릭터를 주입하며 2004년도 한국형 도시무협 영화로 제작되었다.
조수괴초로 기억되는 성룡의 학다리 서기의 폼새를 계승한 캐리 앤 모스의 공중부양 학다리 팔벌리고 서기 포즈는 '무서운 영화'를 거쳐 '소림축구'까지 전승되다 결국 한치의 변함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이하 아라한)'에게 전이된다. 문제는 이러한 단편적인 차용이 "있었다"가 아니다. 이러한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는 점에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예견되었던 가이리치 카피설은 이번에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가 류승완에게 열광했던 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본 실증적 합 때문이었다. 다찌마와리에서 보여준 60년대 한국 영화의 오마주가 개그와 결합했을 때의 포복절도, 그리고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국적 합, 혹은 홍콩의 여타 무협이 보여준 기교, 기예의 합에서 벗어난 진짜 싸움박질 같은 결투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악의 무리를 평범한 청년이 구해낸다는 뻔한 플롯은 이 영화의 결점이 아니다. 흠잡을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진 CG의 무개성도 이 영화의 결점은 아니다. 류승범만 잘 살아낸 캐릭터뿐 다른 캐릭터의 두리뭉실 또한 이 영화의 결점은 아니다. '아라한'에서 바랬던 건 잘빠진 무리없는 그런 도시무협 영화가 아니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박찬욱에게 기대하는 것, 홍상수에게 기대하는 것, 김기덕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류승완식 상업영화의 색깔을 보기 원했던 것이다.
아직 그는 두 개의 비주류 영화와 두 개의 메이저 영화를 했을 뿐이다
나는 그가 류승완식 상업영화의 색깔을 부디 되찾기를 기도해마지 않는다. 색깔은 잃었으되 망가진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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