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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딴생각

(2001.8.9) A.I.를 보다.

by 그럴껄 200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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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로 조는 빠굴로봇이다.
데이빗은 사랑을 목마른 로봇이다.


태현이는 왜산 부조리에 경련을 일으키는 한국사회의 일탈녀 지현이에게 맹목적인 헌신을 선사했다면 오스먼트는 눈한번 깜짝하지 않는 독고다이 쌈마이 모습으로 엄마라고 명명된 오르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선사했죠. 오옷! 아니! 우리나라는 이미 사이버화한 인간의 탄생을 영화로서 이미 목격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엽기적인 그녀는 AI보다 한발 앞선 사회경고성 철학무비였단 말인가? 긁적, 미안요. 이건 나의 쒯오바 되겠슴다. 암튼....AI의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지는 저 지글로 조에 때문에 뭉게진 AI의 네러티브 얘기나 좀 해봐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빠굴로 조는 어떤가? 개체로서의 남자가 가지는 조금의 단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임신의 걱정도 없고 질병의 위험도 없죠. 돈을 갖고 도망치지도 않으며 못생긴 뇬이라고 뺀찌 놓는 일도 없슴. 마치 듀스비갈로의 사고뭉치 어항 청소부(듀스비갈로)의 마음씨에 어항집 쥔 남창(이넘 이름 기억 안남.)의 외모를 3단 합체시킨 넘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회는 비인간적인 것에 대해서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인가? 그렇담 저 빠굴로 조는 킹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답은 조금 회의적입니다.

흔히 말하는 킹카, 퀸카는 어떻게 정의되어질까? 그건 다양성을 담보(씨바 이래야 발전적 진화가 가능하다)하는 유기체의 생존적 특성상 현 사회에서 우성개체의 집합이 우열성이 혼재되어 있는 개체보다 적어야만 나올 수 있습니다. 졸라 다 우성이라면 그건 우성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담 우리의 빠굴로 조는 우성개체일까? 인간이 빠굴로 조와 조우할 때 빠굴로 조의 모습에서 과연 오르가자미를 느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나불거리자면 빠굴로 조는 불쌍하게도 값비싼 실리콘 자위용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빠굴로 조에게 연민을 갖는 것은 뭉게져버린 영화적 네러티브의 잔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죠. 빠굴로 조에게는 사랑의 감정 자체가 없으며(데이빗이 최초의 애정 로봇이니까) 단지 성욕의 해소물로서의 가치만을 가질 뿐입니다. 로봇은 데이터가 입력되지 않은 대가성 호의에 반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빠굴로 조는 데이빗을 도웁니다. 졸라 인간적인 거쉬면서 네러티브 다 깨먹는 설정 되게습니다. 원래 스탠리 큐브릭의 원작 시나리오에는 빠굴로 조의 모습이 음울하고 어두운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게 희화화 되면서 문제는 커진거죠. 졸라 무겁고 어두운 캐릭터로서 감정을 숨겨야할 캐릭터가 토욜밤의 열기의 존트라볼타 같은 행동이나 하고 있으니 어두워도 들킬 것 같은 구라가 확 발가벗겨져 나온 것이죠.

하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빠굴로봇을 만든 회사에서 왜 빠굴로봇이 취하는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로봇 도망칠 것 같은 놈이라면 몸속에 시한폭탄이라도 작동시키던가 말이죠. 이넘 거의 프리랜서 되겠습니다. 함 빠굴 해주고 돈 받고....씨바 지가 다 먹구....

- 만일 스탠리 큐브릭이 이 영화를 완성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데이빗은 사랑에 집착하는 집착증 환자로, 빠굴로 조는 이생명 빠굴 하나로 살아가는 SM빠굴 로봇으로 그리고 데이빗의 양부모는 편집증적인 기세로 자식의 미래를 그려놓는 괴팍한 부모로 나오지 않았을까요?

- 시네21에서는 김혜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거짓말의 최고수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라고 했는데 아 아줌마도 좀 웃깁니다. 하긴 씨바 원태연이도 시인이라는 세상인데요 뭘....

- 오스먼트 그쉐익 연기는 진짜 눔물 찔끔 하게 하네. 영화중 내내 눈한번 깜빡 안하는 연기며 그 선한 눈빛까지 졸라 감정선 건드리는 안광이 놀랍습니다.

- 올해는 15분, 메멘토, 배틀로얄 정도만이 기억에 남네요. 졸라 돈들인 작품들이 여느때 보다 많았던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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