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고수는 정상에서 만나는구나. 나훈아, 전인권, 그리고 클린트 형아의 [밀리언달러베이비]
by 그럴껄200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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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선택을 함에 있어서 후회하는 이유는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미련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혹은 ‘다른 선택을 통해 더욱 나에게 이익이 남지 않았을까?’하는 미련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고집을 낳고 고집은 수많은 똥지뢰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1/8,000,000의 당첨확률을 가진 로또를 되거나 혹은 안되거나 하는 1/2확률게임이라는 착각에서 사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로또는 안사는 게 이기는 것이다. 안삼으로써 우린 로또를 놓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수는 미련과 집착을 버림으로써 완성된다.
내 상식선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트롯트 지존은 나훈아다. 아니 이정도 표현 어설프다. 대한민국 음악사에 그만큼의 무대 장악력을 가진 사람 없다. 세븐이 지 아무리 날라 옆으로 돌아차며 가랑이 사이로 7자를 만들어도, 서태지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흔들며 울트라 방성대곡을 해도, 나훈아의 꺾고 넘어가다 슬쩍 시선을 빼는 뒷맛의 카리스마를 따라갈 수 없다. 시선을 빼 버리는 것이 바로 놓아 버리는 것이며 놓아 버리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걸 그처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놓아버릴 때를 아는 타이밍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은 우락부락하고 거친듯한 인상의 나훈아를 대한민국 정상에 40년간 붙잡아 놓은 원동력이다. 절제가 폭발보다 무서운 것이며 시선에 남는 것보다 시선에서 빠지는 것이 기억되는 것이며 결국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모순된 진실은 나훈아 40년 정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전인권은 다른 의미에서 놔버릴 줄 아는 고수다. 그는 말함으로써 자신을 감싸주고 권좌를 보전할 수 있는 권력의 달콤함을 놓아버렸다. 어눌하게 말하고 툭툭 내어 던짐으로써 가식이 주는 달콤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향취(여성지 버전)’, ‘락쿼는 오이세개로 살아요(문희준 버전)’, ‘세계가 인정해야하는 대한민국 음악사의 대부(스포찌라시 버전)’등의 비루한 찬사를 내 던지고 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을 보라. 타이틀에서 이미 안 싸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놓아버림으로써 [밀리언달러베이비]는 승리한 영화가 되었다. 프랭키는 결국 지는 게 이기는 사람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는 패배자처럼 나오고 분명한 살인자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승자다. 매기는 결국 마지막 라운드의 패자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면에서 분명한 승자다. 아이언은 또 어떤가? 패자가 승리하는 인도의 빛이 됨으로써 그 역시 승자의 반열에 올려야 할 것이다. 매기의 경기장에 뒤편에서 외치는 프랭키의 목소리는 칠순의 경계에서 도전해야하는 삶의 고단함이다. 그건 칠순의 감독만이 할 수 있는 통찰이고 칠순이 되어서도 고수의 자리에 있는 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결과이다. 요컨대 칠순의 감독이 만든 칠순 정도의 내공은 되어야 만들 수 있는 진짜 이기는 것에 관한 영화가 바로 [밀리언달러베이비]이다.
노련한 칠순의 감독은 매기의 성공기를 놓아버리고 프랭키의 해피엔딩을 놓아버리며 아이언의 라스베가스 행을 놓아버리고 처절한 링 위의 혈투도 놓아버리고 감정의 자잘한 질곡만 이끌고 런닝타임을 이끌어간다. 버린다는 것은 어렵다. 우린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가 자동차가 터지고, 악이 응징되며, 주인공이 승리하거나 승리의 순간에서 안타깝게 죽어버리는데서 나온다고 철썩 같이 믿지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도 나온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버리는 건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럽고 무엇보다 미련이 남는다.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사탕이 결국 이빨을 썩게 만들 거라는 건 사탕을 먹는 순간 사라지는 고민일 뿐이다. 우리는 실제로 수많은 사탕을 입에 물고 살지 않는가 말이다. [밀리언달러베이비]는 복잡한 네러티브도 없고 얽히고 설킨 감정의 또아리도 없고 끔찍한 음모나 배신도 없다. 그럼에도 속 깊이 울렁이는 여운이 남는 것은 마르고 닳도록 불법이 설파한 ‘놓으면 다 내 것이 된다’는 진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콘테이너 박스에 빨간 글씨로 써 놓은 해병대 전우회 스트커 한토막처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일이기도 하다.
난 2005년도에 봤기 때문에 2005년도 상반기 최고의 영화로 [밀리언달러베이비]를 이야기 하겠다. 고수는 정상에서 만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발견한 것도 그렇지만 칠순의 감독이 보여준 버림의 미덕에 감사하는 뜻이기도 하다.
사족 : 이 포스트의 배경음악으로 나훈아의 ‘내삶을 눈물로 채워도’ 전인권은 ‘걱정말아요 그대’를 붙이고 싶으나 ‘족’같은 저작권법 때문에 가사만 따다 붙인다. 인생 뭐 있냐? 그냥 붙인다. 잡아가라 그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 나훈아
간간히 너를 그리워하지만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때로는 너를 미워도 하지만 가끔은 눈시울 젖기도 하지
어쩌면 지금 어딘가 혼자서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몰라
초저녁 작게 빛나는 저별을 나처럼 보면서 울지도 몰라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아마 난 평생을 못잊을 것 같아 너를
인연이라는 만남도 있지만 숙명이라는 이별도 있지
우리의 만남이 인연이었다면 그 인연 또 한번 너였음 좋겠어
어쩌면 우리 언젠가 또다시 우연을 핑계로 만날지 몰라
내 삶의 전부 눈물로 채워도 널 기다리면서 살른지 몰라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아마 난 평생을 못잊을 것 같아 너를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아마 난 평생을 못잊을 것 같아 너를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아마 난 평생을 못잊을 것 같아 너를
걱정말아요그대 - 전인권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댄 너무 힘든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힘든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