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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딴생각

내 인생의 키워드

사람이란 모름지기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1990년 돌아가신 할머니는 줄곧 말씀하셨다. 동물의 왕국을 할 때면 늘상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펴놓고 저 지역은 어디며 어떤 도시들이 있고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김찬삼은 저기서 뭘 느꼈네, 뭘 봤네를 상항 주석처럼(요거 오타다. 상항을 항상으로 바꾼다) 달아주셨지만 내 관심사는 아프리카편이 아니라 유럽편에 있는 프랑스 니스! 거기의 늘씬한 토플리스 차림의 미녀들이었다. 혹은 꼬추에 꼬쟁이를 차고 다니거나 입술을 늘리거나 목을 늘린 아프리카 원주민이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말이다.

어제, 술을 먹으며 유로 2004에 흥분해 있다가 문득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인생은 과연 어떤 키워드로 살아왔을까?

1988년 : 중학교 3학년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시험이었다.
1989년 : 고1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술이었다.
1990년 : 고2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축구였다.
1991년 : 고3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대입이었다.
1992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연극과 섹스였다.
1993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군대와 섹스였다.
1994년~1996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제대였다.
1997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학업이었다.
1998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축구였다.
1999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휴거였다.
2000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취업이었다.
2001년 : 이 때 내 주된 관심은 섹스와 돈벌기였다.

그리고 그 후부터 나의 주된 관심은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탄식 혹은 찬탄, 혹은 그립다이다. 요컨대 나는 2002년의 월드컵을 시점으로 30대의 암울한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30대의 키워드는 단연코 먹고 살기로 귀결된다.

로또의 행운아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 절체절명의 명제에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비 온다.

내 친구 삼용이는 어디서 또 비온다, 술먹자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