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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할아버지는 의문사를 하셨다.
농담처럼 말하듯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가 광복후 월남하신 할아버지는 쉽게 말하면 빨갱이였다. 1954년 출소 직후 여수에서 간첩활동 혐의로 잡히셔서 공주(?)교도소에서 출소 며칠을 남겨두시고 의문사를 당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7살이셨는데 어린 나이에 교도소 데려 가는 게 불안하셨던 외할머니에게 외할아버지는 "혹시, 우리 막내 죽은 거 아니니?"라고 걱정하셨던 말이 유언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원죄의식처럼 외할아버지의 과거를 안고 딸들을 키우셨다. 그것의 반작용 때문인지 몰라도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와의 결혼을 반기셨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친일파였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부산 수산업 조합장이셨고 할머니는 산골에서 태어난 천재였다. 정신여고를 졸업하시고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할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4분 중 한분이셨다. 태생이야 가난한 빈농의 수많은 딸 중에 하나이셨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미화할 수는 없다. 독실한 크리스챤이셨던 할머니의 휴머니즘은 일본인 패망 이후 동료 일본인 의사가 본국으로 송환 될 때 눈물 흘리신 것처럼 감상적이되 정치적이지 못하셨다.
대한민국 최초의 무통분반 시술, 흔하지 않는 산부인과 여의사, 낙태를 시술하지 않는 청렴함은 할머니의 개인사적 가족사적 자랑일 수 있으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피흘려왔던, 죽어왔던 이들에 대한 반성일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두 집안의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 속에서 유시민을 본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1당 되는 것 나도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사표가 되더라도 민노당의 득표율이 올라가는 것에 나는 빌고 또 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일구어낸 노력과 성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피들의 열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파적 성공이었고 당략적 선공이었을 뿐이다. 그들이 전태열 열사를, 박종철 열사를, 이한열 열사를 울며 부를 때마다 나는 뗏구정물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모습이 생각날 뿐이다. 이들을 외쳐야 하는 것은 정작 민노당이 아닌가?
2
할머니는 외할머니에게 항상 미안해 하셨다. 당신들이 이루어 낸 것들에 비해 보잘것없고 무학이셨던 외할머니였지만 그 투박한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도 항상 고개 숙이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컨대 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당신이 피 흘리지 않은 원죄를 외할머니를 통해 속죄하셨던 것이다.
어제 오늘, 유시민의 말로 또 시끄러워졌다. 열우당 그만큼 절박한 거 안다. 그러나 민노당을 찍는 것은 사표일 뿐이라는 말은 동의 못한다. 50년 기다렸는데 4년 더 기다릴 수 있다. 이번 총선 5%와 10% 얻는다고 해봐야 떨어지는 것은 똑같지만 지난 총선에서 5% 획득했덙 정당과 10% 획득했던 정당이 같을 수는 없다.
난 유시민이 좋다. 그의 달변, 그의 논리, 그의 글을 보면 올곧게 걸어가는 한 선비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민노당에게 겸손했으면 한다. 열심히 가시밭 하얀길 가는 민노당에게 돌은 던지지 말았으면 한다. 적어도 나의 할머니는 겸손과 자기반성을 통해 지난날을 용서 받으려 하셨다. 나는 이게 정의라고 생각한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의문사를 하셨다.
농담처럼 말하듯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가 광복후 월남하신 할아버지는 쉽게 말하면 빨갱이였다. 1954년 출소 직후 여수에서 간첩활동 혐의로 잡히셔서 공주(?)교도소에서 출소 며칠을 남겨두시고 의문사를 당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7살이셨는데 어린 나이에 교도소 데려 가는 게 불안하셨던 외할머니에게 외할아버지는 "혹시, 우리 막내 죽은 거 아니니?"라고 걱정하셨던 말이 유언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원죄의식처럼 외할아버지의 과거를 안고 딸들을 키우셨다. 그것의 반작용 때문인지 몰라도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와의 결혼을 반기셨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친일파였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부산 수산업 조합장이셨고 할머니는 산골에서 태어난 천재였다. 정신여고를 졸업하시고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할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4분 중 한분이셨다. 태생이야 가난한 빈농의 수많은 딸 중에 하나이셨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미화할 수는 없다. 독실한 크리스챤이셨던 할머니의 휴머니즘은 일본인 패망 이후 동료 일본인 의사가 본국으로 송환 될 때 눈물 흘리신 것처럼 감상적이되 정치적이지 못하셨다.
대한민국 최초의 무통분반 시술, 흔하지 않는 산부인과 여의사, 낙태를 시술하지 않는 청렴함은 할머니의 개인사적 가족사적 자랑일 수 있으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피흘려왔던, 죽어왔던 이들에 대한 반성일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두 집안의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 속에서 유시민을 본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1당 되는 것 나도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사표가 되더라도 민노당의 득표율이 올라가는 것에 나는 빌고 또 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일구어낸 노력과 성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피들의 열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파적 성공이었고 당략적 선공이었을 뿐이다. 그들이 전태열 열사를, 박종철 열사를, 이한열 열사를 울며 부를 때마다 나는 뗏구정물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모습이 생각날 뿐이다. 이들을 외쳐야 하는 것은 정작 민노당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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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외할머니에게 항상 미안해 하셨다. 당신들이 이루어 낸 것들에 비해 보잘것없고 무학이셨던 외할머니였지만 그 투박한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도 항상 고개 숙이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컨대 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당신이 피 흘리지 않은 원죄를 외할머니를 통해 속죄하셨던 것이다.
어제 오늘, 유시민의 말로 또 시끄러워졌다. 열우당 그만큼 절박한 거 안다. 그러나 민노당을 찍는 것은 사표일 뿐이라는 말은 동의 못한다. 50년 기다렸는데 4년 더 기다릴 수 있다. 이번 총선 5%와 10% 얻는다고 해봐야 떨어지는 것은 똑같지만 지난 총선에서 5% 획득했덙 정당과 10% 획득했던 정당이 같을 수는 없다.
난 유시민이 좋다. 그의 달변, 그의 논리, 그의 글을 보면 올곧게 걸어가는 한 선비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민노당에게 겸손했으면 한다. 열심히 가시밭 하얀길 가는 민노당에게 돌은 던지지 말았으면 한다. 적어도 나의 할머니는 겸손과 자기반성을 통해 지난날을 용서 받으려 하셨다. 나는 이게 정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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