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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딴생각

대신 싸줄 수 없는 똥, 내셔널 트래져

by 그럴껄 200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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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싸줄 수 없는 똥, 내셔널 트래져

1987년도 가을은,
고추가 거뭇 거리기 시작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카데미 과학사에서 나온 bb탄(콜트 45구경)이 모든 장난의 대세였으며 육사의 대권은 영원할 것만 같았고 폐품을 수집해 학생 의료보험비를 충당하는 웃지못할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시행되는 시기였다.

“옆 학교 애들은 내년 올림픽을 대비해 가을볕에 뒹구느라 두 명이 뒈졌다더라“라는 휑휑한 소문이 도는 해였으며 무엇보다 잊지 못할 괴소문은 볼펜을 양손에 끼고 분신사바를 외우면 머리위로 귀신이 나온다는 것, 또 새벽에 혼자서 분신사바를 하면 천원짜리 도산서원 뒤뜰에서 머슴이 하나 튀어나온다는 지금에 와서는 기도안찰 소문이 왕왕 열네살 머릿속을 뒤엉클어 놓던 시절이었다.

아주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이순신 동상에 구멍에서는 12시만 되면 검은 손이 튀어 나온다거나 초등학교 부지가 원래 공동묘지였다는 전설에 대해서는 그저 애새끼들의 왕구라라고 콧방귀도 안 뀌는 놈들이 천 원짜리 속 도산서원 머슴이(한국에만 수천만장 있을) 나올 거라고 믿었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 와중에 머슴을 봤다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는 놈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열네 살이었고 그 정도 소영웅주위에 입각한 구라에도 우린 감탄하거나 의심하거나에 상관없이 그 무용담을 경청했다.

나중에 와서야 그게 아주 저급한 음모론의 태동이며 나이를 먹건 안먹건 그런 음모론은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세상의 대부분은 음모에 다름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하다못해 반에서 학습부장쯤 되는 지위에 보장되는 애들의 8할은 대통령(혹은 육군대장이라고도 하는데 이건 대통령에 다름 아닌 꿈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에는... 간혹 대가리가 일찍 굵은 애들 중에는 보안사 사령관이라고 정확하게 직책까지 밝히는 놈도 있었다.)이 꿈인 것처럼 세상은 헤게모니를 쟁취하려는 인간과 지켜내려는 인간들의 크고작은 싸움판이었고 헤게모니로의 도전과 응전에는 반드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음모의 힘은 그럴듯함이었고 음모로 부화뇌동하는 자들에게 그럴듯함은 신념과 용기를 주입하는 몰핀이었다.

음모와 비밀을 밝혀나가는 스펙터클은 스티븐(스필버그)만한 놈이 없었다. 스티븐의 ET야 B짜 소니 베타비디오로 친구놈 주산학원 따라가서 본것이 전부였으니 밤씬은 통째로 들어내서 안본거나 다름없었지만 그 뒤로 이어진 구니스, 그렘린, 백투더퓨처에 나는 그의 영화를 전체를 통키(업자용어 : 일부 용역이 아닌 전체를 수주함)로 신뢰하고야 만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압권이었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실제와 신화가 난교하듯 섥혀있는 이야기 구조는 역사, 세계사를 쪼다 수준으로 풀어내는 나에게도 기원전부터 시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지게 만들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다.

학습부장이었던 용식이의 꿈이 대통령에서, 로또에서, 지금하는 배달 피자집 매상이나 좀 올랐으면 하는 바램으로 바뀌어 간 것처럼 내 상상력도 천원에서 나오는 도산서원의 머슴존재가 가능할까에서 어제 술자리에서 내가 필림 끊긴게 언제부터였나 수준으로 바뀌어 갔다.

21세기식 “인디애나 존스”라고 헤드카피 날리던 내셔널 트래저는 그런 이유에서 나에겐 의미 없는 카피이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이미 타워링을 뛰어 넘는 재탕작으로 설날과 추석 연휴에 눈에 못이 박히도록 봐온 안봐도 비디오가 되어 버린지 오래. 뿐이랴? 제2의 마돈나로 자칭하던 김완선이 마돈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제2의 김완선으로 성공하리라던 오룡비무방이 쫄딱 망한 것처럼 성공한 케이스에 뭍혀가려는 조잡한 세몰이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보지마세요”라고 외친 꼴이 아닌가?

그래도 꾸역꾸역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달랑 하나였으니 그 오롯하게 기억나는 도산서원으로의 재귀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거창스러웠다. 프리메이슨단의 기사가 된 벤자민이 얼씨구, 독립선언서 뒤에 무슨 암호가 적혀있음을 알게되는데 것 참, 국립박물관 터는 것이야 누워서 떡먹기 보다 30원어치 만큼 어려운 수준인데다가 그럼 그렇지, 아버지가 숀 코널리에서 존 보이트로 바뀐 것을 빼면 설정 하나하나가 어찌 콧터럭 만큼 다르지도 않을까하는 황망함에 니미, 악당이 애비를 인질로 보물의 목전까지 도달하는 플롯마저 젠장,

영화가 꼭 없던 것을 만들어야 좋은 영화인 것은 아니다만 어정쩡한 국내 배급사의 세미트롯식 헤드카피에 헤드카피 수준에서 딱 반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플롯에 200년짜리 역사의 빈약함을 유럽의 석공조직까지 겉다리 식으로 들먹이며 소영웅주의하에 끌어들이는 개그까지 어디하나 웃.기.지.않.는.곳.이.없.다.

결국 영화 내셔널 트래저는 인디애나존스가 대신 싸주길 바랬거나 빈약한 역사를 프리메이슨이란 야사까지 동원해 싸주길 바랬지만 지 똥은 결국 지가 싸야 된다라는 만고의 진리만 확인시켜 준 채, 싸다 주저앉은 꼴이 되어버렸지 뭔가?


3줄요약
인디애나존스는 재미있었다.
근데 우린 너무 대가리가 굵었지.
똥은 지가 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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