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여행의 딴생각
나는 왜 캠핑을 다니게 되었는가?
그럴껄
2012. 1. 3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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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여름이면 짐을 쌌습니다.
4천만 필수 머스트 해브 아이템 블루스타와 아버지의 20년 된 황동코펠은 빠질 수 없었구요.
코오롱 나일론텐트에 돗자리 하나, 그리고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코펠 하나를 챙겨서 말이죠.
안양 유원지, 관악산, 청평 왜갈소, 수동 유원지, 현리 계곡, 홍천강, 안면도 등을 가족과 함께 쫒아다녔습니다.
어쩔 땐 차로, 어쩔 땐 기차로, 어쩔 땐 택시로, 어쩔 땐 봉고차에 끼여서 말이죠.
청소년 축구 8강전을 청평에서 라디오로 들으며 흥분했을 때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카메라 필름을 살 때는 언제나 운동회, 피서, 가족 대소사일 때였는데 필름이 두통 이상 넘어가는 경우는
오직 피서 때만이었습니다.
머리가 굵어져 중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의 여행에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보다는 친구와 어울리는 게 훨씬 좋았으니까요.
아버지 배낭을 빌리고, 코펠을 빌리고, 버너를 빌려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 훨씬 흥분되었습니다.
그렇게 십 몇년.
아들은 장가를 가게 되었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캠핑을 몰랐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그저 과거 피서의 없을 때 모습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콘도로, 호텔로, 펜션으로 혹은 해외로...
여행은 갔으나 콘크리트를 벗어나진 못했지요.
아는만큼 보이니 그게 전부였겠지요.
정정하셔야 할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은 그제서야 옛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그 때가 얼마나 즐거웠던가를
20년 하고도 몇년이 더 지나서야 알게된거죠. 정말 어리석게도 말입니다.
아이는 지나가는 개미에 소스라치고, 현관 앞에 있는 귀뚜라미에 움직이지 못하고, 공원 매미 사체에 꼼짝도 못했음에도
도시 애들은 다 그렇지 하고 말았던 어리석은 아빠였습니다.
콘크리트 안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죠.
땅에서 자는 법.
아이에게 알려준 첫 번째 자연이었습니다.
불을 다루는 법
이건 정말 저도 미치겠더라구요.
일렁이는 불꽃을 보면 두 시간 지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지요.
자연 속에서 불과 함께 지새우는 맛.
이 맛을 도대체 어디에 비유해야 합니까?
아이는 탕수육에 짜장면을 비벼먹는 것보다 좋다고 했습니다.
아놔. 이숑키.
촌놈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벌개진 얼굴로 뛰노는 법을 순식간에 터득하더군요.
아빠도 잡지 못하는 무당개구리를
수백마리씩 잡기도 합니다.
물론 공치는 날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입돌아갈 때까지 홍천강에서 입질을 기다렸지만
우리 입만 돌아가기도 했으니까요. 으, 영하 20도라니.
카야킹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이놈.
아저씨들한테 오지게 물벼락을 맞더니...
약이 한참을 올랐는지 그 뒤에 바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물론 제 용돈으로요. 엉엉.
왜 아이 수영에 아빠 용돈이 줄어야 하는 겁니까?
암만 날이 춤고, 덥고, 귀찮고, 힘들어도
저 자는 모습만 보면 또 캠핑이 오고 싶어집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극복하고 어울리고 도전하고
아이는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비단 아이뿐만이었겠습니까?
저도 바뀌었죠.
산짐승으로 말입니다.
스무살 피씨서브 별사랑 동호회 이후로 20년만에 다시 망원경도 시작했구요.
까무룩하게 먼 달을 보며 오랜만에 분화구 숫자도 세어봤습니다.
망할놈의 랜턴에 빠져
속도 많이 상했지요.
후아.... 저 놈은 진짜 애증덩어리에요.
왜 마님들이 머슴을 좋아하는지도 알게되었지요.
막 웃통을 알아서 벗게 되더라구요. 으흐흐흐흐흐
아, 물론 저희는 가족입니다.
가족끼리는 상상하시는 저런거 안됩니다. ^^
홑겹 하늘 밑에서 빗소리, 눈 사락 거리는 소리 이것도 예술이지요.
그리고 더치.
네, 저놈이 만들어주는 닭, 돼지, 소, 국, 밥.
인간 내장 사이즈 한계를 시험하는 녀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한우, 냉장삼겹살, 항정살, 뭐 이런게 아니라
내가 한 나무에 구워먹는 고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 물론 밥이 빠질 수 없구요.
30여년간 백패킹으로만 산행을 즐긴 노인네들께도 캠핑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산에 와서 릴렉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먹는게 처음이라는 양반들은
입을 못다물더군요.
그렇게 캠퍼로 3년.
아직, 저 자연의 깊이가 얼마인지 모릅니다.
녀석은 그저 멍때리며
열심히 놀 궁리만 하고 있구요.
겨울에서도 살아낼 정도만 겨우 터득했습니다.
아, 물론 패트로님에게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지요.
암요. 암요.
이제 겨우 한 발을 뗴어 놓고
다시 캠핑을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서 어떻게 지나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동안 캠핑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될 겁니다.
캠핑, 이거 재미있어요. ^^
4천만 필수 머스트 해브 아이템 블루스타와 아버지의 20년 된 황동코펠은 빠질 수 없었구요.
코오롱 나일론텐트에 돗자리 하나, 그리고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코펠 하나를 챙겨서 말이죠.
안양 유원지, 관악산, 청평 왜갈소, 수동 유원지, 현리 계곡, 홍천강, 안면도 등을 가족과 함께 쫒아다녔습니다.
어쩔 땐 차로, 어쩔 땐 기차로, 어쩔 땐 택시로, 어쩔 땐 봉고차에 끼여서 말이죠.
청소년 축구 8강전을 청평에서 라디오로 들으며 흥분했을 때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카메라 필름을 살 때는 언제나 운동회, 피서, 가족 대소사일 때였는데 필름이 두통 이상 넘어가는 경우는
오직 피서 때만이었습니다.
머리가 굵어져 중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의 여행에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보다는 친구와 어울리는 게 훨씬 좋았으니까요.
아버지 배낭을 빌리고, 코펠을 빌리고, 버너를 빌려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 훨씬 흥분되었습니다.
그렇게 십 몇년.
아들은 장가를 가게 되었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캠핑을 몰랐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그저 과거 피서의 없을 때 모습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콘도로, 호텔로, 펜션으로 혹은 해외로...
여행은 갔으나 콘크리트를 벗어나진 못했지요.
아는만큼 보이니 그게 전부였겠지요.
정정하셔야 할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은 그제서야 옛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그 때가 얼마나 즐거웠던가를
20년 하고도 몇년이 더 지나서야 알게된거죠. 정말 어리석게도 말입니다.
아이는 지나가는 개미에 소스라치고, 현관 앞에 있는 귀뚜라미에 움직이지 못하고, 공원 매미 사체에 꼼짝도 못했음에도
도시 애들은 다 그렇지 하고 말았던 어리석은 아빠였습니다.
콘크리트 안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죠.
땅에서 자는 법.
아이에게 알려준 첫 번째 자연이었습니다.
불을 다루는 법
이건 정말 저도 미치겠더라구요.
일렁이는 불꽃을 보면 두 시간 지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지요.
자연 속에서 불과 함께 지새우는 맛.
이 맛을 도대체 어디에 비유해야 합니까?
아이는 탕수육에 짜장면을 비벼먹는 것보다 좋다고 했습니다.
아놔. 이숑키.
촌놈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벌개진 얼굴로 뛰노는 법을 순식간에 터득하더군요.
아빠도 잡지 못하는 무당개구리를
수백마리씩 잡기도 합니다.
물론 공치는 날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입돌아갈 때까지 홍천강에서 입질을 기다렸지만
우리 입만 돌아가기도 했으니까요. 으, 영하 20도라니.
카야킹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이놈.
아저씨들한테 오지게 물벼락을 맞더니...
약이 한참을 올랐는지 그 뒤에 바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물론 제 용돈으로요. 엉엉.
왜 아이 수영에 아빠 용돈이 줄어야 하는 겁니까?
암만 날이 춤고, 덥고, 귀찮고, 힘들어도
저 자는 모습만 보면 또 캠핑이 오고 싶어집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극복하고 어울리고 도전하고
아이는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비단 아이뿐만이었겠습니까?
저도 바뀌었죠.
산짐승으로 말입니다.
스무살 피씨서브 별사랑 동호회 이후로 20년만에 다시 망원경도 시작했구요.
까무룩하게 먼 달을 보며 오랜만에 분화구 숫자도 세어봤습니다.
망할놈의 랜턴에 빠져
속도 많이 상했지요.
후아.... 저 놈은 진짜 애증덩어리에요.
왜 마님들이 머슴을 좋아하는지도 알게되었지요.
막 웃통을 알아서 벗게 되더라구요. 으흐흐흐흐흐
아, 물론 저희는 가족입니다.
가족끼리는 상상하시는 저런거 안됩니다. ^^
홑겹 하늘 밑에서 빗소리, 눈 사락 거리는 소리 이것도 예술이지요.
그리고 더치.
네, 저놈이 만들어주는 닭, 돼지, 소, 국, 밥.
인간 내장 사이즈 한계를 시험하는 녀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한우, 냉장삼겹살, 항정살, 뭐 이런게 아니라
내가 한 나무에 구워먹는 고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 물론 밥이 빠질 수 없구요.
30여년간 백패킹으로만 산행을 즐긴 노인네들께도 캠핑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산에 와서 릴렉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먹는게 처음이라는 양반들은
입을 못다물더군요.
그렇게 캠퍼로 3년.
아직, 저 자연의 깊이가 얼마인지 모릅니다.
녀석은 그저 멍때리며
열심히 놀 궁리만 하고 있구요.
겨울에서도 살아낼 정도만 겨우 터득했습니다.
아, 물론 패트로님에게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지요.
암요. 암요.
이제 겨우 한 발을 뗴어 놓고
다시 캠핑을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서 어떻게 지나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동안 캠핑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될 겁니다.
캠핑, 이거 재미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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