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딴생각

현대문고에 대한 죄송함

그럴껄 2005. 11. 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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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어이없게도 전 문예부였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말이죠.
다른 여타의 고등학교 문예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문학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저급 센티멘탈의 정수를 모은 작품을 발표하는 행사를 매년 가졌습니다.

지금 보면 술먹지 않아도 낯이 화끈거리는 그런 글들을
아무런 쪽팔림 없이 200~300여명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 하고 그랬죠. 그땐 그게 정말 쪽팔린건지 몰랐습니다.

암튼....

문학의 밤에 필요한 팜플렛은 항상 협찬을 받아서 만들었습니다.
교지 살 때 단골로 이용하던 문방구
매년 학교에서 책 구입비 명목으로 나오는 십몇만원어치 책을 사던 책방
그리고 선배들에게 찬조를 강요해서 팜플렛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협찬 1순위는 언제나 약수동 현대문고였습니다.
언제나 흔쾌히 찬조를 해주셨던 점잖은 서점 주인아저씨는
눈쌀한번 찌푸리지 않고 우리의 협찬에 기꺼이 응해 주셨드랬습니다.
광고문구는 매년 똑같았습니다.
"책은 우리 동네 명망있는 현대문고에서"
이 문구를 제가 만들어 드린건지 아저씨가 이렇게 해달라고 말씀해주셨는지는
모릅니다만 이후에도 우리 문학의 밤 찌라시 뒷면에는 항상 저 문구와
광고가 협찬의 명목으로 올라가 있었드랬죠.

정말 죄송한 건 문학의 밤 끝나고 추첨을 통한 상품 증정행사 때 나눠줄 책들을
역시 현대문고에서 뽀리깠다는 겁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나중에 꼭 사과하고 싶습니다.

젊잖고 멋지셨던 그 양반의 모습을 오늘 한겨레 2면에서 뵙게 된 건
충격적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릴 때 치기까지 죄송스러워졌지 뭡니까.
다시 재기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포스팅 합니다.

혹시 약수동에 사시는 분 계시면 꼭 들러주세요.


http://www.hani.co.kr/kisa/section-002001000/2005/11/0020010002005112719010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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