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딴생각

여러분은 꿈이 있습니까?

그럴껄 2005. 10. 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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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국민학교 2학년 작문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의 용돈, 오늘의 놀이, 오늘의 밥, 오늘의 친구만이 가득하던 9살 대뇌피질에 첫 번째 미래형 질문을 받았던 건 9살 때 였습니다. 친구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무조건 반사처럼 ‘대통령’, ‘장관’, ‘우주비행사’ 등등을 적어 냈고 9살치고 대가리가 굵었던 내 짝(남자였습니다)은 ‘보안사령관’을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 1층에 분식집을 세놓은 2층 만화가게 주인을 적었죠. 요직을 두루 섭렵해야만 하는 당시의 “미래형 작문 예시 기준”에 미달했던 저는 다음날 어머니를 학교에 모시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합니다.

당시에 ‘보안사령관’을 꿈으로 적었던 내 짝 진용이는 지금 ‘처갓집 양념통닭’ 사장이 되어 불닭집으로의 업종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중입니다. 혁명과 통일을 꿈꾸던 대학동창이자 골수 NL인 재형이는 기획부동산 실장이 되어 돌산을 개발예정지로 속이고 잔잔한 농투성이들의 심장을 잔인하게 찢고 있습니다.

그나마 저는 좀 형편이 낫습니다. 비록 만화가게를 가질만한 돈도 없고 분식집을 세 놓을만한 건물도 없습니다만 만화가게 같은 문화컨텐츠를 만들고 세상의 주전부리가 될만한 좁쌀만한 블로그도 갖고 있잖습니까? 농담처럼 지인들에게 던지는 “넌 커서 뭐가 될거니?”란 질문은 아직도 제게는 만화가게를 할만한, 분식집을 세 놓을만한 꿈이 남아있기에, 또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던지는 자기암시 같은 겁니다.

꿈을 물어볼 때면 사람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이렇게 말하죠. “씨발, 난 이미 다 컸어.”라고 말입니다. 혹시 그거 어렸을 때 무조건 반사로 외치던 장관, 대통령, 우주비행사의 영향 때문 아닙니까? 애초에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입된 주위 어른들의 강요에 의한 꿈 아니었습니까? 진짜 자기 꿈 꿔본 적도 없는 것 아닙니까? 자기 꿈이라면 이제 겨우 스물에서 마흔 사이에 이루어질 수는 없잖습니까?

며칠전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24살 때 자전거로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같이 자전거 여행을 했던, 그리고 지금은 우리증권 대리로 살고 있는 재웅이형에게 온 전화입니다. 그는 10년 전에 약속한 같이 회사를 차리자고 했던 그 꿈을 다시 이야기 하면서 마흔 전까지는 꼭 이루어 보자고 합니다. 무얼 어떻게 언제 누구랑 할지는 아직도 모릅니다만 그건 현재 진행중인 우리가 꾸는 꿈입니다. 증시가 떨어질때면 자기돈 꼴아박으면서도 남의 손해주는 걸 끔찍이 싫어했던 그 형이 꾸는 꿈을 전 또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같이 가는 거지요.

아직도 전 2층 만화가게에 1층 분식집 세를 놓는 소소한 꿈이 있습니다. 아니, 머리가 굵은 다음부터는 그게 얼마나 큰 꿈인지 덜컹 겁도 납니다. 마흔이 되면 서로의 가정도 있고 돈쓸 일도 솔찮을테지만 그 때는 또 그 꿈을 이루러 삽질을 좀 할겝니다. 아직, 그래도 내 나이 겨우 서른셋이고 7년이나 남아 있으며 인생은 어차피 미완성에다가 쓰다만 편지입니다. 가을에다가 바람이 살살한데 오늘은 한 3년에만에 6시 칼퇴근 한번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혹시 당신은 커서 뭐가되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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